미디어다음 / 조혜은 기자
전국 고속도로의 휴게소에 설치돼 있는 상당수의 자동분사장치 안에는 방향제가 아닌 살충제가 들어있으며 일부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환경호르몬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이 나오는 배식구 위에 '살충제가 나오는 자동분사기가 설치돼있다. 이곳의 살충제에는 환경호르몬 물질인 '퍼메트린'이 들어있다. [사진=환경정의]
환경단체인 환경정의는 29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환경정의는 최근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30여 곳 중 무작위로 선정한 42곳을 대상으로 휴게소 내 방향제 또는 살충제의 설치 여부와 설치된 제품의 종류와 주요 성분, 살포 방식 및 위치 등을 조사한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100%가 살충제 또는 방향제를 설치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40%가량인 17곳은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정의는 대부분의 방향제와 살충제는 자동분사 방식으로 휴게소 안에 뿌려지고 있는데다 방향제나 살충제 등의 표시가 없어 시민들이 방향제로 오인하기 쉽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휴게소에 뿌려지는 살충제 가운데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퍼메트린’ 이 들어있는 제품을 설치한 곳도 9곳이나 됐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구가톨릭대학교 산업보건과 허용 교수는 “퍼메트린은 세계생태보전기금(wwf)과 일본 후생성에서 지정한 환경호르몬으로 농약류로 분류되는 물질”이라며 ”퍼메트린은 주로 신경장애를 가져와 두통이나 메스꺼움, 현기증 등의 증세가 나타나며 심할 경우 혈압상승, 전신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휴게소에 뿌려지는 ‘퍼메트린’ 함유량은 시중에 판매되는 모기약의 퍼메트린 함유량보다 많아 인체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허교수는 주장했다. 실제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정용 살충제인 ‘F모기약’ 에는 퍼메트린이 0.1g 들어있지만 고속도로에서 뿌려지고 있는 살충제에는 최소 0.2g부터 최고 7.4g까지 들어 있었다는 것.
살충제가 뿌려지고 있는 휴게소 실태를 보고하고 있는 환경정의의 오성규 사무처장. 앞에 놓은 것은 휴게소에서 직접 수거해 온 살충제들 ⓒ 미디어다음 조혜은
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은 “휴게소에서 뿌려지는 살충제는 자동분사기를 통해 지속적이고 직접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가정용 살충제에는 ‘밀폐된 실내에서 사용한 후 반드시 환기 할 것', ‘인체를 향해 분사하지 말 것’등 사용상의 주의사항이 명시돼 있다. 반면 휴게소의 살충제에는 에어컨 가동때문에 밀폐된 실내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휴게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휴게소에서는 음식을 제공하는 배식구 앞 또는 다 먹은 음식을 가져다 놓는 퇴식구 등에 분사기가 설치돼 있어 먹는 음식 및 접시 등 조리기구에 살충제가 뿌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정의측은 "페메트린이 농약류로 분류된 것을 감안하면 시민들은 일부 휴게소에서 농약이 뿌려진 음식’을 먹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환경정의는 이번 조사에서 방향제 또는 살충제 성분을 알 수 없었던 21곳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방향제의 경우 대부분 성분표시를 하지 않아 제품의 유해성을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 특히 방향제에‘세균 퇴치향’이라는 문구와 함께 각 해충들을 막아 주는 것처럼 묘사돼 있어 살충 성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식물추출원액', '향료’ 등만이 성분으로 표기돼 있다고 환경정의측은 주장했다. 환경정의측은 "생산업체들이 살충제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약사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을 악용해 사실상 살충제를 방향제로 등록해서 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퇴식구 바로 위에 살충제가 나오는 자동분사기가 설치된 칠곡휴게소. 이곳의 살충제에도 환경호르몬 물질인 '퍼메트린'이 들어있다. [사진=환경정의]
이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 살충제가 뿌려지고 있는데도 이를 관리 감독할 기관이 없는 실정이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국도로공사와 고속도로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각 휴게소 운영업체에 운영권을 일임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홍보 담당자는 “휴게소 운영은 임대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관리기 쉽지 않다” 며 “자동분사장치가 화장실에 설치돼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영업소 관계자는 “살충제가 아니라 해충퇴치제”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대부분의 휴게소가 산기슭에 위치해 여름에 해충이 많아 퇴치할 방법을 고민하다 천연물질로 만들었다고 해서 설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방향제처럼 향도 좋고 식약청에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해서 고객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페머트린이 사용된 살충제의 사용허가에 대한 책임은 식품의약안정청에 있다. 그러나 관리 단속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대부분의 방향제와 살충제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의 경우 약사법에 의해 규제를 받지만 의약외품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디. 식약청 의약품 안전과 관계자는 “휴게소에서 사용하는 살충제는 의약외품으로 단속할 근거가 없다” 며 “가정용 모기약을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구매해 사용하는 것처럼 사용자가 자유롭게 제품 선택해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페머트린이 들어있는 살충제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 휴게소의 시설담당자는 “벌레를 없애는 성분이 들어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며 “파리와 모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설치했고, 살충제를 납품하는 업체에게 인체에 무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조사를 실시한 환경정의의 이진우간사는 “휴게소의 이러한 행태는 밥상 위에 에프킬라 뿌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며 “실태 조사를 벌여 유해 살충제의 확산과 가동을 막고 관계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735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