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국세청장으로는 처음 구속되는 전군표(全君杓) 청장은 6일 오후 8시17분 부산지검 청사를 나오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전 청장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숨을 푹 쉬었다. 이어 그는 “뭐라고 말씀 드릴지 모르겠고,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임 여부를 묻자 전 청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면서 “무혐의 판정이 나길 기대했는데 구속됐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구속에 대비해 이미 사퇴는 하고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전 청장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한 뒤 부산구치소로 향했다.
◆영장으로 본 전 청장의 혐의
하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에서 밝힌 전 청장의 혐의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정상곤(53·구속) 전 부산국세청장이 전 청장에게 상납금을 전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7월부터였다.
작년 7월 18일 전 청장에게 처음 전달된 1000만원은 정상곤 전 청장이 전군표 청장의 취임식 행사 참석차 국세청 본청을 방문했다가 집무실에서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에 대한 인사나 업무 처리를 잘 봐달라는 취지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어 작년 8월 1000만원, 10월 2000만원, 11월 1000만원, 올 1월 1만달러를 차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작년 8월은 전국세무관서장회의, 10월은 국정감사 수감 준비, 11월은 수원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리는 조세공무원 연찬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 전 청장이 상경했다가 상납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10월에 전달된 2000만원은 서류봉투가 아닌 플라스틱 사각 파일철에 담아 준 것으로 조사됐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정 전 청장의 상납은 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올 1월에도 계속됐다. 당시 본청 건물 2층에서 사무실을 쓰고 있던 정 전 청장이 전 청장을 찾아가 ‘해외 출장 잘 다녀오시라’는 말과 함께 1만 달러가 든 봉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전 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이런 검찰 수사 내용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추가 증거 제시도 물거품
전 청장의 변호인측은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추가 증거를 제출하며 혐의를 뒤집으려 했다. 변호인측이 제출한 새 증거는 상납금 가운데 2000만원이 전달됐다는 작년 10월 10일 서울 수송동에 있는 국세청 본청 현관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의 녹화 테이프 내용을 복원한 것이었다. 변호인측은 “녹화 테이프에 정 전 청장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며 전 청장의 뇌물수수 혐의 일절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측은 “국세청의 출입 통로가 현관 말고도 여러 개 있을 수 있고, 녹화 테이프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변호인측이 제시한 증거로는 전 청장의 무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제출된 CCTV 영상은 사람 얼굴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상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고심 끝에 검찰의 소명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봤다.
양측은 또 전 청장이 정 전 청장에게 한 ‘입 막음’ 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격렬하게 부딪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인 ‘증거 인멸 염려’와 직접 연결되는 정황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 줬다. 전 청장이 현직을 계속 유지하는 한 참고인들의 진술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전군표 국세청장 구속되기까지 검찰 수사일지
-2006년 8월 26일 :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 건설업자 김상진씨로부터 1억원 받아
-2007년 6월 초순 : 김씨, 비리폭로 협박하던 직원 검찰에 진정. 검찰 수사착수
-2007년 7월 16일 : 검찰, 김씨 구속. 정윤재 전 비서관은 무혐의 처리
-2007년 8월 9일 : 정 전 청장 수뢰 혐의로 구속. 정 전 청장 “1억원 용처는 말 못한다”
-2007년 8월 중순 : 이병대 현 부산국세청장이 정 전 청장을 접견, ‘입막음’ 시도
-2007년 9월 12일 : 전 청장, 자료 받으러 온 검사에게 “1억원 용처 수사 말아달라”고 요구
-2007년 9월 중순 : 정 전 청장 “전 청장에게 5000만원과 1만달러 줬다” 진술
-2007년 10월18일 : 정 전 비서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2007년 11월 1일 : 전 청장, 현직 국세청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검찰 소환조사
-2007년 11월 6일 : 현직 국세청장으론 처음으로 구속 수감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