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것은 대북특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대남특사를 받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대북특사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다. 오는 23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의 주례 회동 때, 대통령에게 건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차명진 대변인에 따르면, "박희태 대표는 최근 꼬인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향후 조치를 받아내기 위해 한나라당에 계신 훌륭한 정치인을 대북특사로 파견하도록 대통령께 건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말한 훌륭한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칭한 말로 추측되고 있다. 박 전 대표를 염두에 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차명진 대변인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과 이야기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박 전 대표측에서는 '특사 파견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사로 거론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대북특사론은 한나라당 내에서 핵심적인 사안으로 거론되는 듯하다. 그만큼 꼬인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절박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이상하기 그지 없다. 차명진 대변인의 말을 인용하더라도, 그 의문은 풀리질 않는다. 그는 대북특사가 "꼬인 남북관계를 풀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향후 조치를 받아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앞 뒤가 맞지 않다. '꼬인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대북특사'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북측 사과를 받기 위해서 대북특사를 보낸다니? 한마디로 '옆구리 찔러서라도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것인데...참으로 볼썽 사납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북측의 과잉대응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당연히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북한에서 대한민국에 특사를 파견하겠다면,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통큰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겠다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거꾸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대한민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낸다니...이거 앞 뒤가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되었다.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중구난방이란 말인가? 정권 초에 쓸데없이 강경발언을 해서 중요한 카드를 날려버리고, 금강산 피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없이 대화를 하겠다고 하더니, 금세 금강산 피격사건을 ARF(아세안 안보포럼)로 가져가 국제압박 카드를 사용하는 등 강경대응을 천명하고, 이제는 화해를 위한 대북특사를 보내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4-5개월 남짓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래 가지고 북한 김정일이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을 무엇으로 볼 것이며, 타국에서는 어찌 볼 것인가? 이미 김정일은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권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금강산 피격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대한민국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해외는 또 어떤가? ARF에서 유명한 외교장관이 금강산 피격사건과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공조를 거론하자, 미국을 제외하곤 '남북 대화로 잘 해결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가 고작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대북특사라니? 그 특사가 북한에 가서 무얼하겠는가? 김정일에게 "제발 빨리 좀 사과하고, 남북대화하자"고 졸라대는 것인가? 그 꼬락서니를 보아야 하는 국민들은 또 무어라고 할까? 제 나라 국민이 죽어도 무시당하고, 결국엔 사과해 달라고 애걸하는 정부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것이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 대북특사로 거론되는 박근혜 전 대표는 무슨 꼴인가? 정권이 난처할 때마다 '대북특사', '총리' '대북특사', 매번 거론되고 있으니...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외교와 국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실리고, 실용이다. 명분 찾다가 청나라 침공을 당하고, 남한 산성 앞세서 머리를 조아리다 왕의 이마가 피범벅이 된 역사를 보아도 외교적 실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또, 쓸데없는 무기를 가지고 허세를 부리는 것 보다, 실질적인 힘을 갖추는 국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스위스'를 보면서 느끼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리와 실용을 취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남들에게 굴욕적이고 챙피한 모습을 보이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ARF에서는 '너희들 문제를 왜 여기까지 끌고 들어오냐'는 핀잔 아닌 핀잔이나 듣는 것이 무슨 실리고 실용이란 말인가? 그래가지고선 실리도 실용도 다 놓치고, 국가 위신만 추락시킬 뿐임을 왜 모르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중구난방, 우왕좌왕만 하다 말 것인가?

적어도 한 나라가 국방과 외교의 방침을 정했으면, 확고하게 밀고 나가야 위엄이 서는 것이다. 그런 위엄이 있어야 다른 나라가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것이 외교와 국방, 대북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되는 것이다. 한번 정했으면 해골이 두쪽나도 밀고 간다는 느낌을 주어야, 주변 국가들이 알아서 처신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럴 배짱이라도 없으면, 슬기롭기라도 하던지....

나라꼴이 이래가지고 서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