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들은 손에서 휴대전화가 떠나지 않습니다. 어림잡아 5분에 한 번씩 문자가 오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답신을 보냅니다.

물론 아이에게도 사생활이 있으니 보자 소리는 안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들이 오고 가는지 궁금합니다. 그도 모자라 컴퓨터에는 한밤중에도 메신저가 뜹니다. 저희들끼리 자료도 주고받으면서 놉니다.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에게 묻지도 않습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부모가 말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래라저래라 해봤자 아이들에겐 안 먹힙니다. 그 세상을 이해 못하면서, 교육을 강화한다고 24시간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킨다 해도, 이미 변화를 거스르지는 못합니다.

촛불시위 배후가 어딜까? 자기들이 모이고 자기들이 하고 싶으면 촛불을 켭니다. 앞장서서 열변을 토하고 분위기를 돋우는 바람잡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는 괴물이라면 사냥할 수가 있지만,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괴물이라서 잡을 수가 없습니다. 물대포 뿌리고 몇 사람 연행한다고 고자질 할 아니들도 아니고 들킬 아이들도 아닙니다. 

아이들을 보면 세상 전복을 노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스스로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표현하는 자발적인 집회처럼 보입니다.  지치면 훌쩍 돌아가고, 끝났나 싶으면 다시 나오는 아이들처럼 보입니다. 배후가 눈에 안 띄는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촛불을 왜 켜 드느냐고 물으면 자기들이 몰지각한 불량학생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공부할 거 다 하고 놀 거 다 노는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상대하자니 아이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이 촛불시위를 막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고 맙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거리로 나온다고 개탄합니다. 아이들에게 배후가 누구냐며 추궁하지만 아이들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무서운 게 없습니다. 자기들 생각에 잘못한 것이 없다고 쇠뇌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경찰도 두렵지 않습니다. 차라리 경찰이 방패도 물대포도 치우고 광장에 죽 둘러앉아 함께 소풍 온 일행처럼 대화를 하며 경찰을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어른들은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있고, 아이들도 대학 입시 압박이 갈수록 세집니다. 그래서 밤 새며 춧불시위를 하는 아이들이 염려됩니다.  세상이 무섭게 변해버렸습니다. 정치도 그 속도에 맞춰 변해 버렸습니다.  잘난 한 사람이 못난 백 사람을 다스릴 수 없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오늘도 우리 아들은 어른들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다른 아이들과 주고받습니다. 디지탈의 위력이 촛불시위를 번지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디지탈이 두렵습니다. 10년 전에 열흘 걸릴 멧세지가 일초 만에 수 천명에게 퍼지는 디지탈 시대가 되면서 아이들이 디지탈의 노예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배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게 배후입니다. 보이지 않는 무서운 괴물이 우리 아이들을 휘어잡고 미궁으로, 진흙밭으로, 깊은 함정으로 끌고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배후가 보이지 않는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