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 겨울, 개성공단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현대아산(주) 및 토지공사의 개성사무소, 시범단지 분양업체중 먼저 진출한 몇개 업체의 공장만이 황량한 벌판에 서부 영화에 나오는 정착촌처럼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서 근무하는 남측 직원들은 여러 가지 불편한 생활을 참고 이겨내야만 했다. 식수는 지하수로 해결하였으나 전기와 전화 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숙소의 방이 거의 전기장판이었으므로 발전기가 고장이 나면 추운 밤을 떨면서 지냈다. 그래도 전력협상은 비교적 빨리 타결되어 ’05.3월부터 문산 변전소에서 송전되기 시작했다. 암흑속에서 광명천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전화는 남측 직원이 약 200여명 체류하고 있었는데 국제전화 2대가 전부였다. 그것도 전화료가 1분에 2달러 54센트였다. 몇마디 통화하면 금방 1만원이 넘었다. 직원들이 서울로 전화를 하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1년이 훨씬 지난 ‘05.12월말에야 통신협상이 타결되어 남측으로 300회선의 직통전화가 개통되었고 요금도 1분에 40센트로 조정되어 겨우 해결되었다.
처음 북측근로자들은 덤프트럭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개성까지의 도로가 대부분 비포장이어서 사고위험도 많았다. 날씨가 춥다보니 트럭에서 내려 공장으로 일하러 들어가는 근로자들의 얼굴은 거의 얼어 있었다. 그래서 관리위원회는 부랴부랴 서울에서 중고버스를 도입해서 북측근로자 출퇴근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하루는 운행점검을 나갔더니 모두 버스 창문을 열어놓고 다닌다. 담당을 불러서 야단을 쳤더니 멀미를 하는 근로자들이 많아서 그런다는 것이다. 차를 타보지 않는 여성 근로자들이 많은 것이다.
공단의 북측근로자들은 80%가 여성들이다. 의류․봉제․신발 등 여성 노동집약적 공장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런데 남측의 입주업체들은 주로 20~30대의 여성근로자들을 요구하고 연령이 많은 근로자는 숙달이 늦다는 이유로 기피한다. 북측은 60세까지 신성한 노동을 하도록 되어있으므로 연령이 많은 근로자들도 함께 고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관리위원회나 북측 로력 담당자들은 항상 골치가 아프다. 어떤 남측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참사는 ‘북이나 남이나 나이 먹으면 괄시받는 것은 마찬가지로구먼’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북측 근로자들은 각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업체에서는 국물을 제공한다. 근무시간은 보통은 8시간이지만 잔업이 많은 경우에는 2~3시간 특근을 한다. 그럴 경우에는 간식이 제공된다. 어느 업체가 처음에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하나씩 제공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먹는 시늉만하고 실제는 안먹더라고 한다. 알고 보니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 뒤부터는 두 개씩을 제공하여 반드시 한개는 보는데서 먹도록 하였다고 한다.
시범단지 기업중 ‘태성하타’ 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업체다. 그러나 개성시내에서는 화장품 만드는 공장이 개성공단에 들어온다고 소문이 났다. 개성 여자들이 ‘태성하타’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졸라서 개성시인민위원회가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와서 보니 화장품이 아니라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공장인 것이다. 실망한 근로자들이 사장에게 항의를 했더니 사장이 준공식때 전 직원들에게 화장품 하나씩 선물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준공식날 사장이 약속한 화장품을 선물하려니 이번에는 북측 당국이 반대를 했다. 이유인즉 다른 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과 형평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사장은 자기 직원들과의 약속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우겨서 겨우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공단은 도라산 CIQ를 거쳐서 약 7km 거리에 있는 북측 CIQ를 통과하여 간다. 해외로 출국할 때와 같은 유사한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휴대품 소지에 몇가지 제한사항이 있다. 핸드폰은 집에 두고 가던지 도라산 CIQ에 맡기고 가야 한다. 왜냐하면 북측은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도 안된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 보수적인 신문에는 북측을 비난하는 기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카메라도 필림카메라는 곤란하다. 군사지역이 많아 사진촬영이 금지된 지역이 많은데 필림카메라는 인화를 해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탈카메라는 괜찮다. 즉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경 등 종교서적도 가지고 갈수 있다. 북측 CIQ에서 왜 가지고 가느냐고 물으면 자기가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면 된다. 왜냐하면 북측은 인민들에게 선교할 가능성에 대하여 촉각을 세우기 때문이다.
공단에서 남측으로 돌아올 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선물로 술을 많이 사온다. 그러나 ‘령정술’ ‘불로술’ ‘뱀술’은 남측 CIQ에서 압류한다. 령정술은 해구신으로 담근 술이다. 처음에는 정력에 좋다고 하여 누구나 사들고 들어왔다. 나도 한달에 두번씩 나올때마다 열심히 사와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05년도 여름부터 남측 CIQ에서 금지하기 시작했다. 환경단체들이 동물과 관련된 술은 안된다고 항의하기 때문이다. 불로술은 불개미로 만든 술이다. 흙이 묻은 삼이나 더덕은 안된다. 전염병을 옮길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린 삼이나 더덕은 괜찮다.
북측 사람들과의 대화는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지도자 및 체제에 관한 발언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 추방된다. ‘북한’ ‘인권’ ‘탈북자’ ‘흡수통일’ 등 북측의 자존심을 손상할 수 있는 용어도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라는 단어는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북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 남조선이라고 말한다. 관리위원회와 북측이 협의시에는 남측․북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호칭도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동무’ 라고 부르면 된다고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동무라는 호칭은 약간은 하댓말이다. 보통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을때 사용한다. 이념적으로 존경하거나 지위가 높은 경우에는 ‘동지’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아바이’라고 부른다. 어르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측 사람들이 무심코 ‘아바이동무’라고 부르는 수가 있다. 이것은 큰 실수다. 굳이 설명하면 ‘어르신자네’라고 말한 셈이 되므로 상대방이 몹시 불쾌하게 생각한다. 보통은 ‘선생’이라고 한다. 즉 ‘김과장선생’ ‘김부장선생’ 등으로 부르면 무난하다. 요새는 개성공단에서는 ‘씨’라는 호칭도 자연스럽다. 우리들의 사용이 일반화 되어있고 북측 사람들도 큰 거부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님’의 호칭은 처음에는 북측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다. 어떤 북측 사람은 ‘수령님’에게나 ‘님’자를 쓰는 거지 아무데나 쓰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북측 근로자들도 자연스럽게 ‘과장님’ ‘부장님’ 하고 부른다.
반말도 주의하여야 한다. 공단에는 대체로 남측 사람들은 관리자, 북측 사람들은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관리자가 자기도 모르게 반말을 하여 시비가 붙는 경우가 있다. 또한 불필요한 논쟁도 하여서는 안된다. 개성시인민위원회는 북측 근로자들을 처음 공단에 배치할 때 논쟁을 하지 말도록 사전 교육을 반드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측 근로자들이 먼저 논쟁을 시작하는 경우는 드믈다. 그러나 북측 근로자가 먼저 논쟁을 유도하면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측면이 있다.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개성공단 입구 왼편에 북측 군인 초소가 있다. 어떤 남측 직원이 술이 약간 취해 가지고 막걸리 두병과 안주까지 사들고서 초소에 갔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고 하면서 막걸리와 안주를 건네 주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북측 군이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술을 주었다‘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겨우 설득을 해서 당사자는 사죄문을 쓰고 무마가 되었다. 사죄문은 일종의 반성문이다.
북측은 남측보다 우리 고유의 전통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많은 어른들에 대해서 보통은 존경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관습이 많다. 공단에서 부부가 같이 일하고 퇴근해도 주로 여자들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들 돌보고 집안일 하고, 남자들은 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자들의 美적 관점도 남측과는 차이가 있다. ‘05.5월에 의류업체인 ’신원에벤에셀‘의 개성공장에서 페션쇼를 했다. 당시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던 김태희를 비롯한 멋진 배우들과 키가 늘씬한 남녀 모델들이 개성공단에 와서 패션쇼를 했으니 공단이 온통 난리가 났다. 북측 참사들과 같이 구경을 갔다. 패션쇼를 직접 본적이 없었던 나는 감동을 했다. 그런데 같이 구경한 북측 참사가 하는 말은 ‘그게 뭐가 예쁩네까? 삐쩍들 말라가지구서리’ 이다. 그들은 아직도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복스럽고 맏며누리감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예쁘다고 한다.
공단 서남쪽에 보이는 300m 정도 높이의 산이 있다. 德物山이다. 최영장군이 이성계에게 처형을 당한 산이다. 최영장군의 神을 받은 남측의 무속인들이 제일 가보고 싶은 신성시 하는 산이라고 한다. 그 산에는 최영장군의 사당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공단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 왼쪽에 진봉산이 있다. 최영장군이 이성계에게 패전하여 붙잡힌 산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공단 인근에는 여러 가지 유래와 전설을 지닌 산과 지명이 많다. 송악산, 금수산, 역적골, 불당골 등등
개성은 비교적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선죽교, 고려박물관(성균관). 왕건릉, 공민왕릉, 숭양서원(정몽주 추모), 박연폭포, 만월대(황성옛터), 영통사(천태종 창건), 민속려관 마을 등 옛 고려의 향기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곳이 많다. 다행히도 개성은 한국전쟁때 폭격을 많이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부터 개성관광의 길이 열린 것은 개성지역 실향민들이나 개성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도 좋은 소식이다.
이야기를 맺기전에 개성공단에서 느낀 소감을 몇마디 적어본다. 첫째, 개성공단은 통일의 실험실이다. 우리 민족이 분단된 뒤 60여년만에 처음으로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같이 의논하고 일하며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치하에서 오랜기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옛날처럼 한민족으로 같이 살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는 곳이다. 둘째, 우리 중소기업의 탈출구다. 지금 우리 중소기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매우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다는 것은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최저임금(약 60달러정도), 거리, 언어, 같은 민족 등의 면에서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동남아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의 미래가 북한에 달려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기타 여러 정치적인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매우 경직되어 가고있다. 북한이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남한의 개성공단 투자를 고맙게 여기고 우리측 기업을 존중하고 보호해 주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자.
김석진( 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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