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演光 月刊朝鮮 편집장
앵커리지 공항 로비에서 현대전자 부사장을 지낸 한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연결승객 탑승을 위해 寄着(기착)한 대한항공 비행기가 다시 이륙할 때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둘이서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2003년 8월에 자살한 鄭夢憲(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무척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대한항공 승객들은 다시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짐을 챙기는 참에 이분이 제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金형, 그런데 우리 鄭회장은 왜 자살을 한 겁니까? 그 양반이 담배를 끊으면 3~4kg 정도 살이 찐다는 걸 알고, 다이어트를 해서 그만큼 살을 빼고 나서 담배를 끊었어요. 정말 치밀한 분이거든요. 사모님과 딸에게 참 자상한 분이에요. 그런 鄭회장이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투신자살했다는 게, 저는 지금도 믿어지질 않아요』
제가 간단하게 답을 해 드렸습니다.
『鄭회장은 남북한의 앵벌이들에게 뜯기고 뜯기다가, 괴로워서 목숨을 버린 겁니다. 정말 모르셨습니까』
金大中 정부의 5억 달러 불법 對北송금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의 수사자료는 3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 자료를 다 읽어 나가면서, 저는 남북한 집권세력의 「봉」이 된 「인간 鄭夢憲」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특검 수사자료에 따르면, 金正日이 당초 남북 頂上회담을 미끼로 남쪽에서 收金(수금)하려고 했던 목표액은 「남한 정부 5억 달러, 현대 10억 달러」로 총 15억 달러였습니다. 「朴智元-송호경」 비밀접촉의 주제는 단 하나, 얼마의 현찰을 金正日의 비밀계좌에 넣어 주느냐였습니다. 鄭夢憲 회장은 이 뒷거래의 현장마다 끌려다니면서 「지불보증」을 강요당했습니다. 鄭회장은 특검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북한의 송호경이) 남측이 내게 「향후 잘되면 10억 달러든, 20억 달러든 몇 년에 걸쳐 지원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들은 뭐라고 했느냐』고 하니까 (송호경이)『캐시로 5억 달러를 요구했다』 하여,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부가 어떻게 돈을 줄 수 있겠느냐』 했습니다. 그러면서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동안 논의됐던 사업권의 代價로 (현대가) 10억 달러를 내놔라』 하여, 저는 『무슨 소리냐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사업권의 가치를 따져 보더라도 2억 달러 정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밀협상은 결국 「현대 4억 달러, 한국 정부 1억 달러」로 낙착이 됐고, 金大中 정권은 정부 몫 1억 달러를 鄭夢憲 회장에게 덤태기 씌워 버렸습니다.
5억 달러를 金正日의 비자금 계좌에 송금하게 만든 한국 정부도, 5억 달러의 현찰을 챙긴 金正日 정권도, 현대가 과연 생돈 5억 달러를 뜯기고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朴智元 대통령 비서실장이 150억원, 權魯甲(권노갑) 前 민주당 고문이 「200억원 ＋ 3000만 달러」를 鄭夢憲 회장에게서 뜯어 갔다고 특검은 발표했습니다. 두 사람은 『거간꾼이었던 무기거래상 김영완씨가 그 돈을 받아 갔다』며 법정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鄭夢憲의 現代에서 빠져나간 것은 분명합니다.
개성공단 착공식이 2003년 6월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發破(발파) 스위치를 누르는 鄭夢憲 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습니다. 두 달 뒤 그는 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스스로 「말도 안 되는」 거래라고 했던, 5억 달러 뇌물 제공에 대해 한마디 抗辯(항변)도 하지 못한 채….
북한은 최근 鄭夢憲씨의 미망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키겠다. 현대에게 주기로 한 개성관광 사업을 롯데관광에게 넘기겠다」고 협박 중입니다. 물론 롯데관광에는 「100억원의 뒷돈」을 요구했습니다. 무리한 對北사업, 터무니없는 對北 뒷거래의 무게에 짓눌려 자살한 鄭夢憲 회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인간의 情理(정리)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북한은 뻔뻔하게 하고 있습니다.
金正日 정권의 앵벌이는, 그들이 「공산주의자의 敎養(교양)」에 투철하기 때문에 계속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기업인·자본가·부르주아가 역사의 전진을 방해하는 反動(반동)입니다. 자본가들을 갈취하고 약탈하는 것은 공산주의자의 순수성을 지키는 정당한 행동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1985년부터 15년간 평양에서 북한과 여러 가지 합영회사를 운영했던 金燦求(김찬구)씨는 『북한 지도부는 기업을 키워서 이윤을 나눠 먹는다는 생각이 없다』며 『그 사람들은 기업을 약탈의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증언합니다.
최근 盧武鉉 외교안보팀의 핵심 당국자와 만나 6者회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불우이웃돕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이 정부의 對北정책 기조가 金正日의 「앵벌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金正日에게 조건 없는 지원을 해서, 金正日 정권을 유지시켜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전략이 盧武鉉 정권에게는 없습니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이 고위 당국자가 제게 이렇게 묻더군요.
『金편집장, 평양에 가 보셨습니까? 못 가 보셨다구요. 꼭 한 번 가 보세요. 가서 그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십시오. 거기는 우리의 1970년대도 아니고, 더더구나 1960년대도 아닙니다. 평양에는 살찐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1만 명에 하나 될까. 다 기름이 빠졌어요. 金正日의 측근이라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노동당 규약이 한반도의 전면적인 적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對北경각심을 한 치도 늦춰서는 안 된다」 이런 얘기가 의미 없어집니다. 그들은 그런 걸 할 힘이 없어요. 저는 평양의 풀 한 포기조차 애처롭게 보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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