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 (尾生之信):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내용의 고사... 출처: 네이버.

 

 

정몽준과 박근혜가 미생지신으로 일합을 주고 받았다.

 

선방은 정몽준이 날렸다. 단지 약속을 했다는 이유로, 홍수가 나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죽은 미생의 행동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가 발끈했다.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약속을 빵꾸낸 여자는 진정성이 없었다, 따라서 미생은 비록 죽었지만 후에 귀감이 됐고, 약속을 어긴 미생의 애인은 손가락질 받아도 싸다는 것이 박근혜의 주장이다.

 

나는 여기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 개개인의 철학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 누구의 관점이 옳고, 누구의 관점이 틀렸다고 단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 가치관이 O/X 문제는 아니지 않나? 따라서 박근혜가 미생의 행동을 "선"으로 보고, 자신도 미생을 따르겠다면, 뭐 좋다. 그것도 본인 자유니깐. 다만...

 

미생을 따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애꿎은 국민 모두에게 미생처럼 죽으라고 강요하지는 말라는 거지.

 

박근혜는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권주자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의사 결정은,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국익이 우선하는 결정이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의무이다. 개인의 가치관을 대통령의 가치관과 동일시 하면...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빵점이다. 개인 박근혜는 미생의 행동이 옳은 행동이라고 해도 상관 없으나, 대통령 박근혜는 미생의 행동을 국가원칙으로 정하면 안된다. 도덕과 윤리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모든 행동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기 때문에 약속장소에 못나가면... 그것이 그렇게 지탄받을 행동인가? 상식적인 사람은 다 그러지 않나? 지진이 난 아이티에 지금 누가 출장가겠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리 밑에서 비명횡사하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가 본맏아야 할 덕목인가? 박근혜는 미생의 행동이 "선(善)"이라며, 모든 국민에게 미생의 행동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독선인 것이다.

나는 다리 밑에서 죽기 싫다는데... 왜 강요하나?

다리 밑이라는 약속을 안지키면... 다 진정성이 없는 쓰레기인가?

 

박근혜는 약속을 안지킨 여자를 진정성이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여자가 다리 위에서 미생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지, 아니면 집에서 미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는지, 그걸 누가 알겠나? 단지 약속을 못지켰다는 결과만 놓고, 그 행위를 진정성이 없는 악으로 규정짓는 것이 바로 독선인 것이다. 선과 악이란 O/X와 달리,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미생과 박근혜의 문제점은...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모르는데 있다.

 

미생과 여자가 한 약속 중에 제일 중요한 약속은 무엇인가? "둘이서 만나자는 약속"이다. 그 외의 "어디"와 "언제"는 주 된 약속을 위한 부수적인 사항일 뿐이다. 미생은 부수적인 사항을 진짜 약속보다 우위에 놓는 우를 범했다. "다리 밑"이라는 하찮은 약속을 지키려다가, 미생은 "만나자"는 여자와의 진짜 약속을 못지킨 셈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진짜 약속을 못지킨건 여자가 아니라 미생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생이 다리 밑에서 기다리지 않고, 다리 위에서 기다리는 융통성만 있었어도...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날은 피하고, 비가 그친 뒤 여자집을 찾아가는 융통성만 있었어도... 미생은 훗날 여자와 오손도손 평생을 함께 보냈을 지도 모른다. 미생이 진짜 어리석은 이유는... 단지 다리 밑에서 물에 빠져 죽것다는 사실보다도, 무엇이 진짜 중요한 약속이고, 무엇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부수적인 약속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있다. 마치 지금의 박근혜 처럼.

 

세종시도 마찬가지이다. 제일 중요한 약속이란... 충청도에 누가 봐도 멀쩡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 아니겠나? 미생이와 여자가 만나서 오손도손 잘 살면 되는거 아니냐고. 앞으로 잘 살 궁리는 하지 않고... 다리 밑으로 안나오면 나 죽는꼴 보라고 난리를 치면 우짜냐고. 내 눈에는 약속이 아니라 그저 억지로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