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적인 면에서도 16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한미동맹 공동비전(Joint vision for the Alliance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은 종래의 군사적 동맹위주에서 진일보하여 외교, 경제, 기업, 시민사회, 문화, 학술, 과학, 녹색성장, 에너지 분야까지 확대되고 한미동맹의 가치가 지역적으로도 한미 및 동북아 문제에서 탈피하여 범세계적 가치로 확장시킨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6.15선언의 폐기와 한국의 주도하에 통일을 공식화한 점이다. 그 동안 국내외 국제정치학자들의 대다수 시각은 주변 4국이 통일된 한국의 출현을 꺼리기 때문에 분단고착화에 무게를 두어왔고 미국 또한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주변국에 자극을 피하기 위해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이번 동맹비전에서 “우리는 동맹을 통해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이르도록 함으로써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해 나갈 것을 지향한다.”라고 천명함으로써 한국 주도하의 통일과 그 통일내용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즉 흡수통일을 한미 정상이 공식화하였다.

이는 6.15공동선언 ②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를 전면 부정한 것이다.

남측의 연합제안은 한반도에 두개의 다른 체제가 있다는 현실인정을 바탕으로 상호 공존공영하면서 민족사회의 동질성과 통합을 촉진해 가는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을 거쳐 궁극적으로 1민족1국가의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통일방안이다. 여기서 연합단계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에서 통일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모색하는 단계로 완전통일 이전 단계이다.

반면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표현이어서 의미가 불분명하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이 1991년 신년사에서 밝힌 '느슨한 연방제’가 현재 북측이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낮은 단계는 통일정부를 완성체로 하는 연방공화국 창립 이전에 양측이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동등하게 참가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연방공화국의 중앙정부는 남북 평화공존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정부, 즉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각각 군사․외교권을 보유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김대중과 김정일이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 목표는 고려연방제로 해석되고 있고 따라서 6.15선언의 숨겨진 이적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임 대통령이 체결한 합의나 조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적 의사표시이므로 후임자도 이를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 합의나 조약이 헌법에 위반된 것일 때에는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헌법 제4조를 보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대 6.15선언의 종착역인 고려연방제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우리의 통일방안과 공통성이 없다. 따라서 6.15 선언 ②항은 헌법에 위반된 무효규정이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6월11일 63빌딩에서 가진 6.15선언 9주년 기념연설에서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 내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라며 6.15선언을 이행토록 협박하였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미 정상은 보란 듯이 민족반역이요 항복인 6.15선언을 사실상 공식 폐기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국가정체성을 회복시킨 역사적 쾌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