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수출하면서 南에 지원 요구
통일부도 ‘시멘트 수출’ 알면서 지원 검토


8월 8일과 19일, 압록강 주변 폭우로 인해 막대한 수해를 입은 북한이 9월 4일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대한적십자사에 ‘쌀, 자동차, 굴착기, 시멘트’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대한적십자사가 8월 31일 북한 수해지역에 컵라면 같은 비상식량과 의약품 등 100억원 규모의 물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하자 북측이 비상식량이나 의약품보다는 쌀, 자동차, 굴착기, 시멘트가 더 시급히 필요하다며 지원 물품 목록을 수정해 요청해온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의 반응은 ‘대한적십자사가 제안한 100억원 내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월 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한적(대한적십자사)이 100억원 상당을 주기로 했고, 저쪽(북한)에서 요청했으니까 쌀은 한도 내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시멘트 지원에 대해서는 조금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쌀과 시멘트의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굴착기와 자동차 대해서는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지원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올 4월 미얀마와 시멘트 거래 정황 포착

이러한 정부의 반응은 자동차와 굴착기에 대해서는 수해 복구가 아닌 군수 등 전략물자로 전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치권과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멘트 역시 수해복구용 이외 다른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최근 시멘트를 수출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어 이번에 우리 측으로부터 시멘트를 지원받게 되면 이를 시급한 외화벌이용 물자로 전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시멘트를 해외에 수출한 사실은 지난 4월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가 확인되는 계기가 됐다. RFA는 당시 동남아시아 미얀마의 틸라와 항구 하역 작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틸라와 항구에 정박했던 북한 화물선으로부터 북한산 무기를 실은 컨테이너 박스를 하역했다”며 “북한 선박은 당초 ‘시멘트’를 싣고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컨테이너 안에는 북한산 지대공 미사일을 포함한 무기가 실려 있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선박이 시멘트로 위장한 무기를 미얀마로 싣고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얀마 외교부는 지난 6월 11일 북한과의 교역 관계를 설명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이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미얀마 외교부는 당시 화물선이 북한 국적 ‘청진호’라고 밝히며 당시 청진호가 틸라와 항구에 정박했던 이유에 대해 “제재 대상 품목이 아닌 시멘트의 수입과 (이와 맞바꾼) 쌀 수출에 관련한 정상적인 상거래 활동이었다”고 주장했다. 미얀마 외교부의 성명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시멘트를 수출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시멘트가 북한과 미얀마 간 교역품목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최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며 시멘트 부족에 시달린다고 알려진 북한이 시멘트보다 더 급하게 필요한 외화를 벌기 위해 시멘트를 내다판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치안정책연구소 유동렬 선임연구원은 “요즘 북한은 시멘트 공장이 잘 가동되지 않아 시멘트가 부족한 상태이지만 시멘트보다 더 필요한 것이 많기 때문에 시멘트를 원조할 경우 군수·전략물자는 물론 수출물자용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평양 주택건설 사업에도 전용 가능성

외화벌이 수출물자 전용 가능성과 함께 우리가 지원한 시멘트가 ‘김정은 후계구도 다지기’에 사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일의 3남이자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화폐개혁 실패 후 김정은의 치적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다. 지금 진행 중인 ‘평양  10만호 주택건설 사업’의 경우 이러한 김정은 치적 쌓기 중 하나라는 분석이 우세한데 만약 한국이 시멘트를 지원할 경우 수해 복구가 아닌 평양 10만호 주택건설에 대부분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지금 북한에선 ‘평양 10만호 주택건설 사업’이 거의 전투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가 지원한 시멘트가 이 사업에 쓰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평양의 주택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여기에 김정은 치적 쌓기가 더해지면서 평양에 2012년까지 10만호의 주택을 짓겠다고 하는 겁니다. 내각에 목표치를 강제로 할당해 마구 아파트를 쌓아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2012년까지 불과 2년 만에 이 사업을 끝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시멘트겠지요.”

북한은 시멘트 생산을 위한 자연 조건이 우리보다 낫다. 시멘트 원료로 쓰이는 석회석의 경우 한반도 전체 매장량 중 71.4%에 이르는 약 1000억t이 북한에 매장돼 있다.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연간 700만~800만t의 시멘트를 생산해 왔다. 한국양회공업협회의 ‘북한 시멘트 산업’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순천, 상원, 2.8시멘트 연합기업소, 승호리, 천내리, 해주, 고무산, 부래산, 만포, 구장 등 10개의 시멘트 공장에서 전체 생산량의 94%에 가까운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자료 : 한국양회공업협회 ‘북한의 시멘트 산업’ 치안정책연구소 유동렬 선임연구원 ※ 연간 생산능력은 1990년 이후 공장 증·신설이 이뤄지지 않아 1202만톤에 정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