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7월 31일자 중앙일보에 도올 김용옥씨는 “첫 번째 도둑놈, 두 번째 도둑놈”이라는 칼럼을 썼다. 즉,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억지부리는 일본 우파들이 첫 번째 도둑놈이고, 남북 공조를 거부하는 한국 우파들이 두 번째 도둑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도 문제는 남북이 공조하여 국제 사회에서 일본을 고립시켜야 해결될 문제인데도, 남과 북은 서로 고립시키기 위하여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에서조차 추태를 연출하였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또 금강산 유람객의 불운은 우발적 사건일 뿐이며, 하등 우리 민족의 대세를 운명지워야 할 사건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한국의 우파들이 도둑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문제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하며, 세계 경영의 제1보는 남북 화해와 남북 경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의 우파 이념에는 민족주의, 즉 민족의 우월성과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그 이전에도 김씨는 “6. 25 전쟁은 남침도, 북침도 아닌 통일 전쟁이었다.”라는 칼럼을 쓰기도 하였다.
(2) 위 김용옥씨의 주장 속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치 않으려는 의도와 함께, 북한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부각시키려는 저의가 깔려 있음을 직시할 수가 있다.
첫째, 김씨는 민족주의의 본질적 개념을 오직 혈통주의에 근거해서 북한 김정일 정권을 한국 민족주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적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본래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19세기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과 함께 표면화되었다. 그것은 혈통주의에 근거한 폐쇄적 개념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적 의식에 바탕을 둔 개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주의는 곧 국민주의(Nationalism)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 한(韓)민족은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에서 기원하였으며, 따라서 오늘날의 중화(中華)인들과 혈통적으로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 최근 사학계의 관점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편>에 “그의 12세 할아버지는 수로(首露)이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 김천씨(金天氏)의 후예라 성을 김씨(金氏)라 했다 하였는데, 그 말은 유신비에도 역시 헌원(軒轅,黃帝)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라 했으니, 남가야의 시조 수로와 성씨가 같은 셈이다.”
또 삼국사기 백제 본기 <의자왕 편>에 “신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소호 김천씨의 후예인지라 성을 김씨라 했고, 고구려 역시 소호의 손자인 제곡 고신씨(高辛氏)의 후예라 성을 고씨(高氏)라고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논거로 할 때, 한국인의 원조는 오늘날 중화(中華)인들의 원시조로 불려지고 있는 황제(黃帝)의 맏 아들 소호 김천씨의 후예이므로, 혈통적 뿌리에서는 우리 한(韓)민족과 중화(中華)인을 구별하기가 매우 애매하다.
또한 한국인의 성씨 일람에 의하면, 한국인의 성씨 중 100개에 달하는 성씨들이 그들의 시조가 거의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로 전래하여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 민족주의를 혈통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발상은 매우 온당치 못하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민족주의 이념은 혈통주의적 관점에서 기술하기보다 7천만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희구하는 공동체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북한 김정일 정권은 7천만 한민족이 공통적으로 희구하는 자유, 인권, 평화, 삶의 질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계속 거부하는 한, 그들과의 대화나 연합은 한국 민족주의의 구현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둘째, 김용옥씨는 한국의 우파들을 남북 화해와 남북 경협을 거부하는 두 번째 도둑놈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객의 총격 살해 사건은 우발적 사건임에도 한국의 우파들은 이를 민족의 대세를 운명지울만한 사건으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우선 그의 말대로 우발적 사건이었다고 하자. 북한은 한국과의 신뢰 회복과 평화적 관계의 지속을 위해서 고위 당국자의 즉각적인 유감 표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관광객의 규칙 위반만을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북한군 초소에서 독자적 판단으로 비무장한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북한 고위 당국자의 치밀한 전략적 차원에서 저즐러졌음이 분명하다.
또 김씨에 의하면,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와 남북 경협에 소홀하여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결론지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66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조건없이 북측에 보내주었음에도 북측에서는 단 1명의 국군 포로조차 송환하지 않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 등에서 식량 원조는 물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한국 국민과 정부에 대하여 ‘‘6. 25 전쟁과 같은 동족 상잔의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든지, “한국 정부의 각종 지원에 감사한다” 든지 하는 단 한마디의 메시지나 고맙다는 표현이 없었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경구가 있다. 이는 사랑(agape)의 힘으로 원수를 회개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마귀를 사랑하라는 말은 없다. 마귀는 멀리 쫓아버려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북한 정권 담당자들은 원수이기 전에 마귀일 뿐이다.
셋째, 김용옥씨는 “6. 25 전쟁은 남침도, 북침도 아닌 통일 전쟁이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혹 그 전쟁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일어난 것이었다면, 내란적 성격을 띤 김일성의 통일 전쟁이라고 미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를 수립하여 국제 연합(UN)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되었다. 세계 유일의 국제 평화 기구인 유엔으로부터 주권 국가로 승인된 국가를 붕괴시키기 위해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 공산 집단의 전쟁 도발이 어째서 침략 전쟁이 아니란 말인가?
김일성의 6. 25 남침으로 한민족은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인 300여만 명이 죽었고, 전국토는 초토화되어 한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불쌍한 민족으로 전락하였다. 그러한 전쟁을 도발한 집단이 바로 오늘날 북한 정권이 아닌가? 36년 간의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희생된 약 10만여 명보다 30배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단군 개국 이래 이처럼 동족에게 처참한 피해를 준 6. 25 전쟁에 대하여 김용옥씨는 마치 제3국의 국민이나 외계인처럼 한가롭게 <통일 전쟁 운운>하고 있으니 그가 동서양의 철학을 두루 공부한 학자인지 참으로 실망스럽다.
2008년 8월 25일
남촌 김종택(전 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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