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지금 스탠포드 대학 후버연구소에 머물고 있다.
후버 대통령 기념관을 겸하고 있는 후버 연구소는 모두 세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행정 棟」과 「도서관」, 「후버 타워」다.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 중간에 우뚝 솟은 후버 타워는 스탠포드 대학의 상징이다.
1천만 평이나 되는 너른 캠퍼스 어디에서든 후버 타워가 다 보인다.
이회창씨의 연구실은 후버 타워 10층 5호실이다. 그가 쓰기 전에는 徐相穆(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이곳에 머물렀다. 徐 전 의원은 이 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를 했기 때문에 경치 좋은 연구실을 얻는 특혜를 누렸다. 그걸 이회창씨가 물려 받은 것이다.
기자는 후버 연구소에서 공부하던 시절(2000년5월~2001년6월) 이 연구실로 여러 번 놀러갔다. 남쪽으로 나 있는 창으로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볕과 푸른 하늘이 한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을 내다보면 야자수가 줄지어선 교정 안의 「팜 드라이브(Palm Drive)」가 그림같이 펼쳐 졌다.
이 연구실에 올라가려면 1층에서 사서에게 방문 통지를 하고, 연구원과 전화통화를 한 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바깥에 있는 철창이 1차로 닫히고, 엘리베이터 문이 다음에 닫히는 구식이었다. 올라갈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 이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기자는 徐相穆 전 의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이게 어떻게 생긴 모양이 꼭 감옥같네요』
지난 3월 한국에 일시 귀국했던 이회창씨는 서울에 온 이유를 한 측근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너무 적적해서···』
기자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늘 재판 서류에 파묻혀 살던 「판사 이회창」에게는 후버 타워 10층 연구실은 아마 천국이었을 것이다. 조용히 책 읽고, 공부하기에 그곳보다 나은 곳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 이회창」에게 그 좁은 공간은 지옥같았을 게 분명하다.
하루에 수천 명씩의 사람들을 만나서 악수를 하고, 『내가 만약 당선되면』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이 나라를 한번 제대로 이끌어 보겠다』고 하루에도 수백 번을 외쳤던 그가 새 소리만 들리는 「후버 타워」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李會昌씨는 지난번 서울에 들어와 옥인동 자택에 머물면서 지난 대선 때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崔秉烈(최병렬) 徐淸源(서청원) 의원 등 당권 도전을 선언한 사람들과 모두 전화통화를 했다.
이회창씨는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보수세력은 다 내 표였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의 색채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20대 30대 표를 얻겠다면서 우왕좌왕한데 대한 뼈아픈 후회였다.
이회창씨는 자신을 찾아온 젊은 보좌역 두 사람을 만났다. 두 사람 다 실업자였다.
괄괄한 성격의 A 보좌역은 젊은 보좌역 가운데 직언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같이 온 전직 보좌역 B 씨가 취직 자리를 구하고 있는 A보좌역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A보좌역은 너무 모가 나서 앞으로 새 직장을 구하면 좀 부드럽게 깍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회창씨는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니에요. 우리 A보좌역은 그 강한 성격이 재산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밀고 나가세요』
A씨는 『이총재가 대쪽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살리지 못하고, 기성 정치판에 함몰되면서 자신의 개성을 잃은데 대해 아쉬움이 큰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C씨는 서울에 머물고 있던 이회창씨 부부와 식사를 같이 했다.
韓仁玉(한인옥) 여사가 완곡하게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는 펄쩍 뛰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총재님, 총재님이 지금 정치의 「정」자를 꺼내는 순간 죽는 겁니다. 그건 꿈도 꾸지 마십시오. 희망이 딱 하나 있습니다.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완전히 나라를 개판을 만들고, 한나라당에서 「이회창을 불러오자」는 얘기가 나온다면 몰라도, 그 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최근 후버 타워로 이회창씨를 방문하고 온, 그의 아주 가까운 지인은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전했다.
『(이총재가 정치에) 미련을 못버린 것 같아』
최근 만난 한나라당의 몇몇 의원들에게서 기자는 「이회창 待望論(대망론)」을 들었다. 한 충청지역 중진 의원이 한 말이다.
『이총재가 정식 당직은 맡지 않더라도, 한나라당의 고문 정도를 맡아 내년 총선에서 우리 당을 위해 뛰어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신당을 창당한다고 난리다. 이총재가 나서준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게 분명하다』
기자는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대권 4修(수)를 한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대통령 자리를 위해 끝없이 치달은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력의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金泳三 전 대통령의 가신인 李源宗(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런 얘기를 했다.
『김형. 해운대 백사장에서, 여의도 광장에서 2백만 개의 눈(1백만 명이 모였다는 얘기)이 자기만을 쳐다보는 상황에 직면한 남자는 그 순간 그 눈빛에 맛이 갑니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아요. 히로뽕 중독자가 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민주화를 위해 네가 양보하라」는 얘기는 먹히질 않아요』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씨의 득표 수는 800만 표였다. 그는 800만이라는 지지자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정계에 복귀했다. 「김대중은 호남 지역기반, 左派 성향으로 절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관측이 압도적이었지만, 그는 김종필과의 연합이라는, 상상할 수 없었던 카드로 정면 돌파에 성공했다.
이회창씨는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씨보다 3백만 표가 많은 1100만 표를 얻었다. 그가 「후버 타워」에서 따뜻한 태양을 혼자 즐기며, 1100만 지지자들의 추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월간조선에서 펌........
737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