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은커녕 전시비축용으로 정규군 30만 톤 및 예비군 70만 톤 등 무려 100만 톤에 달하는 군량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북한 당국은 “식량 뿐 아니라 군 보관시설에만 150만 톤의 전시용 유류와 탄약 170만 톤을 비축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정보당국으로부터 이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힌 윤 의원은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비축된 이 전시물자들이 “각각 100일 안팎의 전쟁 지속능력을 가진 막대한 양”이라고 추산하는 한편, “작년 곡물생산량이 예년보다 늘었음에도 북한이 해외공관을 동원하며 식량을 더 모으는 이유는 내년 김일성 100주년 생일에 예정된 3대세습 행사를 위해 ‘특별 식량배급 이벤트’를 벌이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전히 미궁 속인 2011 식량난 이슈, 실체는 어디에?
최근 세계식량계획(WEP) 등의 북한 식량사정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관련 문제에 대해 그간 회의적인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이전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관측되는 점, 둘째, 당국이 그토록 다급한 실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우리측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에 임하지 않고 있는 점, 셋째, 식량을 지원하더라도 투명하게 배급될 가능성이 적은 점 등이다.
이중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지난해 400만 톤 규모를 기록, 최근 몇 년에 비해 식량사정이 크게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 정부는 추정했다. 또 올 3월 미국 시민단체들은 작년 북한이 512만 톤의 곡물을 생산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규정한 예상소요량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에 반해, 최근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영국에 방문한 자리에서 작년 한파와 수확량 부족 때문에 “앞으로 두 달이 고비”라고까지 토로하는 등과 같이 북한 당국은 끊임없이 식량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윤 의원의 이번 보고는 북한 식량난 의제에 대해 그간 간과되었던 중요한 단서를 던져준 셈이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늘 북한 체제의 문제로 소급된다. 따라서 북한 식량난 문제 역시 애초부터 그 식량의 배급 주체가 어떤 성격인지부터 분명히 평가되어야 했다. 올 1월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군량미 헌납운동’을 벌였다는 소식을 기억하더라도, 북한이 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들에 속아선 안 된다. 90년대 중후반 북한에서 대량아사가 발생했던 원인도 결국 근본적으로는 김정일 정권의 ‘의도적’ 배급중단이었다.
못 먹는 북한군을 위한 ‘못 먹는 군량미’
작년 말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군수산업 투자에 몰두중인 북한은 사상 최고의 특수전 병력(20만여 명)을 확보해 침투전 및 후방 공격 작전을 수립하고 있으며, 핵·탄도미사일 등의 전략무기를 끊임없이 개발 중이다. 전시전환용을 비롯해 300여 개의 군수공장이 항시 돌아가고 있는 북한 체제는 나라가 아니라 군대로 규정되는 게 옳다.
그러나 이 거대한 반란군은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원래 곡물배급량인 700g은 절반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다, 그나마도 철저히 ‘못 먹을 쌀’만 풀려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본 방송국은 11일 “중요 요충지들의 군량미 저장창고인 2호 창고에는 아직도 2년 전에 끌어들여 쌓아놓은 낟알들이 그대로 있다”는 북한 내부소식통의 충격적인 증언을 전하기도 했다. 결국 김정일이 쌓아놓은 100만 톤의 군량미란 대부분 썩고 묵은 쌀들이다. 전시에 그런 쌀을 먹는다는 게 전쟁보다 가혹할 것이다.
김정은, ‘3대세습 적격자’답게 식량문제 해결할까
이렇게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닌, 있는 걸 있는대로 썩혀가면서도 북한이 식량난 호소에 유난을 떠는 이유는 앞서 윤 의원의 지적대로 3대세습의 성공을 위해서일 확률이 크다. 그래서 대북식량지원에 빠지지 말아야 할 첫째 조건이 바로 철저한 분배감시인 것이다. 이 원칙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의 빌붙기를 역으로 이용해 북한에서의 식량배급 실태를 명백히 밝혀내 문제삼는 가운데 3대세습에 제동을 거는 전략도 계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인민해방전선이 어제인 6일 함경북도 소식통의 말을 인용, 북한 정권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이 “올해 중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고 보도한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어려우면 어려워질수록 ‘영도자 홍보’에 열을 올려대는 조직이 북한 정권이다. 원래 김일성 빨치산의 만주 피신에서 유래한 ‘고난의 행군’이라는 표현이 김정일의 영웅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 지칠 힘도 없을 정도로 그간 김정일에게 속아온 북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건 실질적인 ‘생활향상’ 뿐이며, 이를 못 이뤄낸다면 주민과 정권 사이의 대립은 김정은이 실세를 누리기도 전부터 극명해져갈 것이다. “하반기까지 주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푼 다음 총비서 직책을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의 전망이 옳다면, 김정은은 완전히 그리스도적인 초능력을 발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외부에서는 ‘구걸모드,’ 그리고 내부에서는 윗쪽의 세력다툼과 아랫쪽의 굶주림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북한 사회, 진짜 문제가 ‘식량부족’일까? 실체를 보고 있는 우리로서는 두 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다. 식량난 사태의 본질로서의 비이성적 군국주의와 독재권력의 부도덕성을 날카롭게 지적해 압박하거나, 아니면 아직 방중(訪中)조차 성사 못한 김정은으로 하여금 ‘알아서 영도력을 뽐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간에 그들의 요구를 곧이 들어주는 것보다는 사태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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