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햇볕정책으로 북한에게 “돈도 주고 시간을 주어 핵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퍼주기”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형제가 오래 전에 심하게 싸우고 갈라섰다. 그래서 서로 원수처럼 지냈다. 이제 형은 먹고 살만하고 동생은 사정이 무척 어려워져 아사직전에 와있다. 혈육의 정은 끊을 수 없어 형이 동생에게 쌀도 갖다 주고 돈도 쥐어주며 화해를 청한다.
만약에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탈북자가 생겨날 수도 있었다. 김정일이 실권하거나 정권 자체가 붕괴되어 북한체제가 해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좋게 생각하면 김정일이 개혁개방에 더 매진하였을지도 모른다.
현재 대북지원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북한의 경제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탈주민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이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는 상태다. 단지 그들의 희망에 따라 국내에 정착시키거나 제삼국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김정일의 실권 등 북한체제의 붕괴 및 해체와 관련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붕괴된다고 해서 우리가 쉽게 흡수 통일할 것이라는 속단은 금물이다.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면 과연 중국이 구경만 할까? 중국은 몇 해 전부터 압록강 도하훈련을 하고 있다. 북한의 붕괴 시에 북한을 접수하겠다는 의도다. 한강 이북에까지 중국의 직접적인 세력권이 된다면 중국의 급성장을 경계하고 있는 일본도 결코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동북아 국제정세가 무척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외교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평화공존 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최대한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여 북한의 조기붕괴를 막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개혁개방은 그들의 폐쇄적인 체제의 속성상 한계가 있다. 또한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계획경제를 추진하지 않으면 성장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전면 개방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부분적으로 개방하면서 외부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미 북한은 부분적으로 개방하는 단계에 와있다. 문제는 자본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군사적 방어수단의 측면도 있지만 사실상 미국과 주변국가로부터 자본과 물질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더 크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되고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채찍을 써야 할 것인가는 재고해야 할 문제다. 어설프게 채찍을 쓰는 것은 우리에게 득보다는 실이 크다. 나그네의 옷을 벗게 만드는 것은 거센 겨울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길 바란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직 그 햇볕이 충분히 따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독의 빌리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한 후 독일통일까지는 몇 십 년이 걸렸다. 인내하고 기다리자. 못된 동생의 등을 또닥거릴만한 형의 아량이 더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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