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을 파는 소년들 [고향 이야기] [2005-10-14 ]
1998년 8월 어느 일요일 이었다고 기억된다.
날씨가 어찌나 무더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사방 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 놓고 책상을 마주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석탄 사시오, 석탄을 사시오”하는 애절한 소리가 들여왔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분명 두 사람이 엇바꾸어 가며 외치는 소리였다. 어른의 목소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이의 목소리 같지도 않았다.
예전에도 석탄을 사라는 목소리는 여러 번 들어왔으나 이처럼 야릇한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마음을 파고드는듯한 목소리에 이끌려 책을 접어놓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 10대의 두 소년이 석탄을 싫은 손수레를 끌고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서지 않는가.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씻어 낼 생각도 않고 내 눈을 곳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애들에게 다가가 어디서 왔는가고 물었다. 그 중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애가 주원에서 왔노라고 했다. 주원이라고 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10여리 길이다. 그것도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달구지 길이다. 무더운 한여름, 맨 몸으로 걸어 다니자고 해도 힘든 판인데 어린것들이 석탄을 한가득 실은 손수레까지 끌고...오죽이나 힘들었으랴 싶어 가슴한구석이 저려왔다.
어느 부모나 고생을 시키려고 자식을 낳지 않는다. 그렇게 낳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정성을 쏟아 붙는다. 그런데 이 어린것들은 왜 잔뼈도 채 굳기 전에 석탄수레나 끌고 다니며 품을 팔아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나이는 몇 살인가, 부모는 다 계시는가, 형제는 몇인가, 학교는 다니는가 등...
우물쭈물 하더니 좀 큰애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지난해 돌아가셨고 저들은 형제간이라는 것, 자기는 15살이고 동생은 13살이며 이렇게 석탄을 팔아서 삶을 산다는 것 이였다. 학교에 가본지가 정말 오래다고 이야기 했다.
참으로 불쌍한 처지에 놓인 소년들이었다. 그 시기 북한에서는 전기와 여타 사정으로 거의 모든 탄광들에서 석탄생산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개인들이 석탄이 나올만한 곳을 나름대로 측량한 후 5~8미터 가량 파고 들어가서 석탄을 캐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산”된 석탄의 일부는 자가용으로, 나머지는 주변 마을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에 보태군 했다. 주원탄광 지구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이 아이들도 그곳에서 개낸 석탄을 판다는 것이었다.
손수레 하나(석탄무게만 약 100kg)에 30원씩 주고 석탄을 사서는 시내로 끌고 와 팔고 있었는데 가격은 수레 당 40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두 형제가 하루 얻게 되는 수입은 20원이다. 당시 시장에서 강냉이 국수 한사리에 15원을 했으니 이들은 하루 벌어서 국수 한사리를 사는 것이 “일”이었다.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고, 나머지 5원은 비상시를 예견하여 저축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들은 그래도 꽃제비 생활보다는 훨씬 행복하다질 않는가!
애들의 이야기를 들고 있노라니 다시 한 번 마음이 짜릿해 졌다. 꽃제비생활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아이들의 말속에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 있어, 시장 통의 빵부스러기를 주어먹으며 사는 아이들, 산과들에서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목숨을 연명해 가는 집 없는 아이들, 한겨울 대합실 땅바닥에 그냥 누워 자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감사함과 저주가 동시에 엇갈렸다. 아이들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있어 감사했고, 300만이나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김정일과 그의 정권이 미웠다.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 주면서 석탄을 모두 사겠다고 했다. 두 형제가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데 그 중 형이라는 아이가 호주머니 깊숙이 간직했던 돈 주머니를 꺼내서는 잔돈을 거슬러 준다는 것 이였다. 그냥 넣어 두라고 하자 “너무 많이 남겨 먹으면 모리간상배가 된다”며 꼭 받으셔야 한다고 응수한다. 모리간상배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리간상배라는 말뜻을 애들이 알겠냐 만은 얌치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진솔한 인생을 가르치는 듯 했다. 그래서 더욱 마음 아프게 하던 아이들, 그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건강하게 꿋꿋이 살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나자고...하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곳 남한으로 왔다. 오늘처럼 우수수 바람이 불어올 때면 석탄을 사라는 아이들의 외침이 가슴을 파고든다.
[김명국, 2003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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