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야 여기! 배 멈춰."

7일 오후 전남 목포시에서 120여㎞ 떨어진 신안군 홍도 해역. 흑산도 선적 18t급 한성호 갑판에서 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유심히 살피던 이상수(48) 선장이 조타실을 향해 "스톱(멈춰) 스톱"을 외쳤다. 지난달 31일 홍어잡이 주낙을 놓은 지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 선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주낙 100바퀴가 사라졌다. 중국 저인망 어선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길이 200m에 달하는 홍어잡이 주낙 1바퀴에는 10㎝ 간격으로 낚싯바늘 수백개가 이어져 있다.

어민들은 보통 20바퀴씩을 연결해 투망하는데, 주낙은 바다 밑바닥에서 30㎝가량 떠 있다. 유영하던 홍어가 낚싯바늘에 걸리면 끌어올려 잡는 어법이다. 투망 4~5일 뒤 그물을 끌어올린다. 이 선장은 주낙 500바퀴를 바다에 던졌는데, 이날 400바퀴밖에 못 찾았다. 그는 "바퀴당 6만원이니 600만원을 손해본 셈"이라 했다.

"지금 서해는 완전히 중국 바다가 됐어요. 중국 어선들 때문에 조업할 곳이 없다니까요. 우리 경비정 몇 척으로는 불법 중국 어선 수백 척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목포해경은 최대 시속 38㎞로 달리는 1000t급 대형 경비함 2척을 신안군 해역 등지에 배치했다. 이 배는 남북으로 225㎞ 떨어진 해상을 오가는데, 흑산도 영해에 출몰하는 불법 중국 어선은 100척에 달한다는 게 어민들 증언이다. 중국 어선들은 홍어 황금어장이 형성된 흑산도와 홍도 부근 우리 측 영해를 수시로 침범한다. 이들은 양쪽 배가 그물을 쳐 바다 밑바닥까지 끌고 다니는 저인망 어선으로 우리 어민들이 쳐놓은 어구를 망치고 홍어를 쓸어가고 있다.

흑산도 선적 21t급 대광호 최용화(48) 선장도 지난 2일 해상에 설치한 주낙 230바퀴를 잃어버렸다. 최 선장은 "수십 척씩 몰려다니는 중국 어선 짓"이라며 "떼를 지어 움직이는 중국 어선 때문에 출어할수록 손해 본다"고 했다.

흑산도에선 10~3월 주 산란 시기에 홍어 황금어장이 형성되는데 최근 중국 어민들은 이 토종 홍어를 노리고 있다. 흑산 해역에선 우리 측 어선 7척이 연간 홍어 200t을 잡아왔다.

중국 어선의 싹쓸이 때문에 올해 홍어 위판량은 크게 줄었다. 신안군수협 흑산지점 위판량은 예년의 10％에 불과하다. 작년엔 일주일 조업으로 어민 한 명당 홍어 300~400마리를 거뜬히 잡았지만 요즘엔 10~30마리가 고작이다.

중국 어선들의 남획에 따른 피해는 서해 전체에서 보고 있다. 현재 태안·군산·목포 EEZ에서 조업 허가를 받은 중국 어선은 1553척이며, 허가받지 않은 중국 어선은 그 몇 배다.

꽃게 철을 맞은 연평도·백령도·대청도 일대 북방한계선 인근에도 중국 어선은 10~20척이 팀을 이뤄 하루 2~3시간씩 우리 쪽 수역으로 넘어와 꽃게를 잡다 해경함이 출동하면 빠져나간다. 연평도의 경우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꽃게잡이가 제대로 안 되자 올해 배 주인 상당수가 배를 팔겠다고 내놓기도 했다. 태안해경은 올 들어 충남 서해상 EEZ 내에서 고등어를 불법 조업한 중국 어선 18척을 적발, 담보금 6억500만원을 부과했다. 조기와 홍어 황금어장이 형성된 목포 인근 해역은 나포된 중국 어선이 해마다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