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6.10.02 22:13 37]
일류대 재정 늘지만 지방대는 고사 … 교수 대학행정 개입 차단 교권 침해
지난달 29일 교육부의 국립대 법인화 공청회가 무산됐다. 온몸으로 저지한 교수들의 반발 때문이다. 국립대 교수인 필자도 그 현장에 있었다.
국립대 법인화란 대학 재정을 ‘독립채산제’로 운영하자는 것이고, 교육 현장을 자본주의의 근간인 ‘시장원리’에 맡겨 자율 경쟁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 경쟁력 강화의 두 축(軸)이 ‘우수한 학생 선발’과 ‘교수들의 뛰어난 연구 업적’에 있다 할 때, 법인화는 이런 점들을 혁신하는 데 분명 기여할 것이다. 더구나 법인화되면 기부금도 늘고, 대학의 자산관리(資産管理)도 자율화되어 재정이 증가할 것이다. 그러니 법인화 그 자체를 쉽사리 반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런 물리적인 몸싸움 현장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학교 재정이다. 흔히 일본 법인화의 성공사례로 도쿄대를 든다. 그런데 이것은 유명 국립대학이 법인화되면 유리하다는 단적인 예일 뿐 지방 대학도 같을 것이라면 큰 오산이다. 9월 18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4년제 국립대 기부금 중 1위인 서울대는 약 1100억원(3년간)인데, 10위인 부경대학교는 서울대의 3%인 약 30억원에 불과하다. 대학이 보유하는 ‘자산 규모’에 대한 지방 대학의 열악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화가 시행되면 속칭 일류 대학은 재정 규모가 늘겠지만, 국고로 충당하던 재원의 반(半)이 끊어진 지방 대학은 갈수록 재원이 부족해질게 명약관화하다.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고 긴축재정구조 아래에서 대학 생존의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지방 대학 고사(枯死)’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아울러 이번 법안은 대학 운영에 대한 교수들의 정서를 완전히 무시했다. 주지하듯이 과거 군사정권 이후 80년대 대학가 교육개혁의 주된 이슈는 총장의 권위주의로부터의 교권 확립이었다. 그 결과 학내 민주화가 크게 신장되었다. 그런데 법안은 이러한 대학의 민주적인 흐름을 단번에 끊고 대학 운영에 교수 참여를 차단, 그동안 쌓아 왔던 교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예컨대 총·학장의 선임, 교원 인사, 재정 등을 ‘이사회’가 장악하고, 이들 이사는 사실상 총장과 교육부가 선임한다. 끝으로 교육부가 무조건 법인화를 ‘강행’하려는 데 있다. 그날의 ‘공청회’는 이를 위한 요식행위였다. 토론자 구성을 보면 그렇다. 법인화의 이해 당사자는 ‘교육부와 국립대’임에도 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회장을 제외하고는 사학계 등 법인화 찬동 입장을 밝혀온 인사가 주축이고, 정작 법인화 시행 주체인 교육부는 빠졌다. 주체가 빠진 토론은 탁상공론으로 흐를 것은 뻔한 것 아닌가. 이런 무책임한 교육행정을 시행하면서도 그날 경찰에 끌려가는 교수들을 팔짱 끼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교육부 당국자들이 딱하다.
홍철훈 부경대 교수 해양생산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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