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
지난달 29일 서울서부지검은 인사청탁을 받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한광옥(65)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그동안 여러 명의 공직자가 김흥주(58·구속·전 그레이스백화점 대표)씨를 통해 한 전 실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정도만 공개했던 검찰은 이날 공소장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한씨가 2000년 비서실장 공관에서 김씨로부터 ‘이수일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가정보원 2차장에 임명되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지난 2005년 국정원 불법도청사건 수사 와중에 자살한 인물이다.
검찰은 왜 하필 지금은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이씨만 청탁대상자로 공소장에 적어 놓은 것일까? 검찰 고위간부는 이에 대해 “대표로 한 명만 쓴 것”이라며, “관심 둘 사람은 거의 없다”고 손사래 쳤다. 이 간부는 “왜 다른 청탁자들은 공개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때가 되면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청탁자들을) 수사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수사 계획도 없는데 어떻게 밝히겠다는 것인지 정말 모를 말이었다. 결국 검찰은 ‘살아있는’ 인사청탁 공직자들을 감추기 위해 ‘말이 없는’ 이씨만 공개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인사청탁자들 사이에 현직 검사가 포함됐다는 의혹까지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이 같은 처사는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현직인 H부장검사가 변호사 시절 검사 재임용이 될 수 있도록 김씨가 한 전 실장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김흥주씨 주변에서 계속 제기돼 왔다. 그런데도 검찰은 H부장검사가 문제의 인사청탁자에 들어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다른 검찰관계자는 “(청탁자들을) 마땅히 처벌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어떻게 수사해 보지도 않고,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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