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 민주당 대선후보 주자 중 떠오르는 스타로 대접받던 하워드 딘(전 버몬트 주지사)은 우리 노무현 대통령과 여러 점에서 비슷하다.
머릿속 생각을 불쑥불쑥 내뱉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침없는 언행,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 진보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개혁성은 물론이요, 인터넷 정치를 구사하고 젊은층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도 ‘닮은 꼴’이다. 이라크 반전시위를 계기로 똘똘 뭉친 20~30대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때 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이른바 ‘딘사모’로 이뤄진 딘의 웹사이트 역시 ‘인기 짱’이었다는 점도 노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다른 점은 노 대통령은 그 같은 인기몰이로 승승장구, 대통령에 당선돼 오늘에 이르게 된 반면 딘은 막상 예비선거라는 뚜껑을 열자, 바로 인기가 추락해 중도하차 위기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딘이 그토록 죽을 쑤는 이유에 대해 미 언론은 지도자로서 기본 자질을 지적한다. 유권자들은 변화와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별 생각 없이 경솔하게 말하며 혼자 잘난 체하고, 독선적으로 비치는’ 딘에게 대권을 맡기기에는 어딘지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인기나 거품이 아닌 후보자의 본질과 실체를 추적하는, 이른바 공직자 감시·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특히 선거초반 딘이 3위라는 부진한 성과를 낸 직후 절규(scream)에 가까운 연설을 한 것은 언론의 집중공격과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미국은 일견 자유분방한 듯 보여도 공직자로서의 자질이 엄격히 심판되고 신속하게 검증받는 사회다. 쉽게 말해 엉성한 지도력이나 포퓰리즘(populism·대중인기 영합주의)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견 권위와 명분이 중시되는 사회인 듯싶어도 공사(公私) 구분이 흐리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으로 미 역사상 최초로 탄핵을 받고 물러난 리처드 M 닉슨(1969~1974년) 대통령의 죄목은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었다. 사람 사는 사회 어디고 거짓말이 없을 수 없겠고, 미국이 도덕적으로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공인(公人), 그것도 최고 권력자들의 언행은 그만큼 엄정한 잣대로 평가받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 노무현 정권은 1년도 안 돼 수많은 스캔들에 휩싸여 있고, 주변 인물들은 이런저런 죄목으로 교도소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당사자나 정권측은 딱히 부끄러워하거나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도리어 “전임자들은 훨씬 더 부패했는데 우리는 그보다 덜하다” “이 모든 문제들이 수구세력이 개혁을 훼방하기 위한 발목잡기”라는 등 이상한 논리들이 나오고 있다. ‘교활한 딕(Tricky Dick)’이란 별명으로 불린 닉슨이 물러날 때 자신보다 도덕적으로 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는 케네디·존슨 대통령 시절을 걸고 넘어지지 않은 것은 그래봐야 통하지 않는다는 사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워드 딘 후보는 “승패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매맞는 데 장사 없다고 그 역시 자신의 말실수들을 물고 늘어지는 언론과 여론에 대해 왜 감정이 없겠느냐마는 그래봤자 자신이 더 손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자제하고 있다. 변명이 많고 자신의 탓을 남에게 돌린다는 소리는 그네들 사회에선 견뎌내기 어려운 평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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