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의원 긴급체포와 공권력
검찰이 11일 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을 긴급체포하려다 실패한 뒤 물리적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12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다시 강제연행을 시도했으나, 한나라당 당사로 옮긴 정 의원은 한사코 출두를 거부하고 있다. 검찰은 문책인사를 단행하는 등 배수의 진을 치면서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다짐하고, 한나라당은 야당탄압으로 규정해 선거 쟁점화를 시도할 태세다. 민주당은 총선에 악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한나라당의 법집행 무력화 기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정형근 의원 사건은 복잡하게 얽힌 사연 만큼이나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논란이 되는 것은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 의원을 긴급체포할만한 적실성이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정 의원에게 긴급체포 수단을 동원한 것은 과잉이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인 반면, 검찰은 정 의원이 무려 스물세차례나 출두요구를 묵살하는 등 공권력 집행을 방해해 왔다고 항변한다. 임시국회가 끝났으므로 그동안 불체포특권을 내세워 법 집행을 막아온 정 의원에 대한 법 집행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검찰이 애초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서 법 집행을 시도했던들 지금과 같은 옹색한 처지로 몰리지는 않았으리란 점이다. 한나라당이 또다시 `방탄국회'를 열까봐 긴급체포토록 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미흡하다. 검찰 지도부와 수사관들의 어설픈 상황인식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에 앞서 깊이 생각할 점은 정형근 의원과 한나라당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법을 준수해야 하는 민주국가에서 야당탄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마냥 법 집행을 거부해도 되는가 하는 비판에 대한 자성의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정 의원은 각종 명예훼손 뿐 아니라 서경원씨 구타와 이근안 고문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등 인권유린 혐의도 받고 있다. 긴급체포 과정에서 그가 거짓말로 수사관들을 속여 따돌리거나, 한나라당의 하순봉 사무총장이 정 의원을 자진출두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수사관들을 철수토록 한뒤, 약속을 뒤집은 것도 공당으로서 떳떳치 못한 태도다.
이번 사건이 총선 정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모처럼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권을 쇄신하려는 기운이 일고 있는 터에, 고질적인 지역감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치권은 이번 일을 당리당략 차원에서 선거에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법을 어겼느냐의 판단은 사법기관에 맡기고, 정 의원은 당당히 검찰에 출두해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이번 일이 감정적으로 치닫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75502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