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사표를 써라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낡은 옛말이 있다. 오랫동안 써먹어온 탓인지 그 말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다가 새로운 감흥을 주지도 못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만큼 진실을 담고 있는 말도 드물다. 새 술을 낡고 오래된 부대에 담는다면 새 술의 싱그러움은 어디로 사라지고 썩은 냄새만 물씬 풍기는 역겨움만 덮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권을 선택했다. 10년 동안 계속된 좌파성향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그들 나름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노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그 노력이 하나같이 국민을 골탕 먹이고 국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비춰졌다.

그런 인식이 꼭 옳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민심의 흐름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국민들은 허다한 약점을 노정한 후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번만은 좌파정권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절박감으로 한나라당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선거사상 초유의 500만표에 가까운 압승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CEO 출신답게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고, 한반도 대운하를 이슈로 선점하며, 서울시장 때 청계천 복원을 이룬 업적을 바탕삼아 표 몰이에 성공했다. 그가 취임하고 나서 맨 처음 한 일은 청와대 진용을 짜고 내각을 구성한 일이다.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수많은 고위 공직자와 공기업의 임원들을 자신의 정책실현에 유리하도록 새로이 구성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꿈쩍 않고 눌러앉으려 한다. 임기제를 내세워 아직 임기가 멀었는데 무슨 사퇴냐 하는 태도다. 임기제를 택하고 있어 그들의 항변이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과거의 정권 내에서의 임기를 말함이지 새 정권에서 신임을 받고 시작한 임기가 아니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공직자의 자세는 투명해야 한다. 과거 정권 하에서 임명되었으면 임기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정권과 진퇴를 같이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어떤 말로 변명하더라도 그것은 구차함을 면치 못한다. 공직자라는 자존심을 살려 새로운 정권의 철학과 가치에 부합하는 인사가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용퇴하는 태도가 의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하나 사퇴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나 새로이 장관이 된 유인촌 이윤호 등이 앞장서 사퇴를 종용하는 발언을 하게 되었겠는가. 이들의 발언에 대하여 야당에서는 크게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다. 자기들의 집권 시에 임명된 사람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정권을 빼앗긴 처지에 산하기관의 임원에 대한 인사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의 정권 10년을 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이미 본란을 통하여 노태우정권의 시작부터 기산하여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 때부터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곤두박질치고, 대통령의 자식들이 부정비리를 저질러 국민의 고혈을 축내는 역할을 해옴으로서 나라의 체면과 국민의 자존심을 땅 바닥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근근이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뤘고 국민소득 2만 불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동안 갈고 닦은 근면한 국민성과 높은 교육열의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세계유수의 대학은 아직 없지만 양적으로는 한국만큼 많은 고등교육기관을 보유한 나라가 없다. 특히 선진국 유학생은 세계1위를 시현한다.

그것은 많은 육영사업자들이 앞 다퉈 사립학교를 설립한 덕이 크다. 그러다보니 사학비리도 발생하고 저질학교도 생겨났다. 이들 학교에 대해서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한다. 지금까지는 임시이사제로 계속 끌어갈 수 있었으나 사학법 재개정으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이를 처리하도록 규정했다. 노무현정권은 물러나기 전에 위원들을 임명했다. 새 정권에게 맡겨야 할 임명권을 행사하여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추천한 사람이 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들 중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불법이사로 지목되어 해임된 인사와 시민대학 추진위원 등 이해 당사자까지 끼어 넣었다. 이들에게 어떻게 공정한 심의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