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012년 3월 22일 오후 12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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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가 중대 기로에 섰다.

지난 주말 대부분 지역에서 야권 단일후보 경선을 치르며 무난하게 총선연대를 성사시키는 듯 했지만, 일부 지역에서 여론조사 조작 논란이 불거지면서 경선 불복 사태가 속출하고 있는 데다 양당간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양당은 ‘책임’을 거론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펴면서도 “야권연대는 굳건히 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야권연대의 판 전체가 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야권연대가 흔들리는 빌미를 제공한 사건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측의 여론조사 조작 문자 논란이다.

이 대표는 지난 17~18일 실시된 여론조사 경선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인 김희철 민주통합당 의원을 꺾고 야권단일 후보가 됐지만, 지난 20일 이 대표의 선거캠프 인사 2명이 ‘여론조사 응답시 나이를 조작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대량으로 보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과욕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선을 그으며 “여론조사 결과에 변동을 일으킬 정도의 행위라 확언할 수 없으나 김 의원이 경선결과에 영향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재경선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상대방인 김 의원은 21일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이라며 재경선 제안을 거부하고 이 대표의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김 의원은 “이 대표는 여론조사 조작문제를 단순한 보좌진의 실수로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재경선 운운하면서 사건을 무마하려하는 것은 죄를 지어놓고 면죄부를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22일에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도덕성이 생명인 이 대표가 여론조사 조작이라는 부정선거를 일으키고도 참 뻔뻔스럽게 국민들에게 ‘다시 출마를 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들, 특히 관악구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정희발 폭탄, 타 지역에도 연쇄 작용

‘이정희 발(發) 폭탄’은 경선을 치렀던 다른 지역에서도 연쇄적으로 터졌다.

특히 ‘3표차’의 극히 적은 지지율 차로 승부가 갈린 안산 단원갑 지역의 문제가 부각됐다. 안산 단원갑은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위해 영입했던 백혜련 후보가 나선 지역이다. 백 후보는 조성찬 통진당 후보에게 패했지만, 여론조사 샘플 모집과정에서 일부 다른 지역구의 유권자가 포함된 점 등을 들어 재경선을 요구했다.

여기에 단일화 경선에서 심상정(고양덕양갑)·노회찬(노원병)·천호선(은평을) 등 통진당 간판 인사들에게 패배한 민주당 후보들이 21일 통진당 후보들의 부정경선을 주장하며 통진당 후보들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통진당은 이 같은 요구에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안산 단원갑 재경선 요구에 대해 “기술적인 한계들을 감안해서 야권연대 협상에서 여론조사 방식에 합의한 것”이라며 “다른 지역에서 여론조사 응답을 해 준 경우가 (경선에 패배한) 백혜련 후보 쪽에서도 찾아보자고 하면 나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고 거부했다.

통진당 공동대표단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성명을 내고 “경선에서 패배한 일부 후보들이 경선 불복을 선언하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들고 나오는 우려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민주당 후보들이 경선결과에 불복해 연대 정신을 훼손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야권연대 합의를 위험하게 하고 있다”고 민주당에 책임을 돌렸다.

대표단은 이어 “지금 야권연대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경선 불복 사태를 정리하고 미합의 지역을 포함한 남은 쟁점을 매듭지어야 한다”며 양당 대표간 회동을 제안했다.

'불쾌한' 민주당 "태산같은 책임 전제돼야"

통진당의 이 같은 태도에 민주당은 불쾌한 심정을 보이고 있다. 박용진 대변인은 통진당의 회동 제안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야권연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금이 갔다”며 “지금은 누가 후보가 되냐가 아니라 정말 어렵게 만든 야권연대를 어떻게 공고히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특히 “양당 지도부가 회동해 야권연대의 판을 유지하고 총선의 공동승리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나 문제를 야기한 측의 태산같은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말씀드린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셈이다.

급기야 민주당은 22일 후보 단일화를 조건으로 안산 단원갑 지역구에 백혜련 후보를 공천했다.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만큼 일단 백 후보를 후보로 등록시킨 뒤 통진당과 후보단일화에 대한 추가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2010년 7.28 서울 은평을 재보궐선거에서 장상(민주당) 후보와 천호선(국민참여당) 후보가 선거과정에서 후보단일화를 한 사례가 있다”며 “안산단원갑 지역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결정은 이 대표와 통진당이 여론조사 조작 파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데 대한 불쾌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야권연대 흔들' 위기에도 이정희는 출마 강행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출마를 강행할 태세다. 심상정 유시민 등 대표단은 22일 새벽 1시경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 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한 결과, “후보직에서 물러나는 것보다 관악구민의 심판을 받는 쪽이 낫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새벽 4시경 자신의 트위터에 “야권연대가 경선불복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빌미를 준 제 잘못이 큽니다. 잠들기 어려운 밤입니다”라는 글을 남겨 입장 변화 가능성을 내비쳐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출마 강행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위영 통진당 대변인은 이날 “관악을에서 재경선을 하자는 것이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유시민 대표도 ““관악을의 오류가 어느 정도 중대한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서로간의 판단이 다르고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유권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입장”이라고 이 대표의 출마 강행을 기정사실화 했다. 유 대표는 “이 대표가 사퇴하게 되면 민주당이 굉장히 데미지를 입을 것”이라고 민주당을 향해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한편, JTBC가 21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이 대표의 거취에 대해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37.5%, 재경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2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은 33.1% 였다.[데일리안 = 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