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90/ 체벌막대기, 너 참 쓸쓸하겠네
문갑식 기자와 그 밖의 사람들에게
오늘 조선일보 A12면에는
"강의실 체벌봉… 할 일은 없었다"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가 실렸군요.
경남 삼천포에 있는 [경남항공기능대학]의 항공전자과 강의실 칠판 옆에 굵기 2.5cm, 길이 1m인 체벌봉(體罰棒)이 걸려 있는데, 이 것은 제자들이 스승에게 "잘못이 있으면 마음대로 때려주세요."라는 뜻으로 학기초에 선물한 것이라 합니다. 그 막대기가 1년 내내 쓸 일이 없을 정도로 학교 전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100% 가까운 취업률을 보여 주고 있다는 기쁜 소식!
이 기사 본문을 쓰고 사진도 찍은 문갑식 기자님은 물론, 이 기사를 지면을 아끼지 않고 편집해 주신 편집국의 편집담당 기자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기쁜 소식, 특히 교육 관련 밝은 소식에 굶주린 이 가련한 백성에게는 이런 기사가 그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어 주는지 모릅니다.
집에서 조선일보를 구독하시지 않는 분들은 인터넷 조선일보에 들어가셔서라도 부디 이 기사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감동하게 되실 것입니다.
일선교육자(학교장 및 평교사)들에게 완전 자유를 허용하면, 이토록 한 학교가 한두 해 사이에 급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교육부의 큰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분들도 이 학교를 방문하여 보고 듣고는, 통제일변도의 고약한 교육정책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바랍니다.
경남항공기능대학 젊은이들!
"강의실 체벌 막대기, 너 참 쓸쓸했겠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응원가를 작사하여 각종 야외 행사 때마다 교가에 이어 부르고, 체벌봉은 학기마다 새로 만들어 두었다가 학기말에 가위바위보로 한 학생이 가지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현재 초등학교 교사인 분들에게 혹시 참고가 될는지 몰라 아래에 저의 과거(교단체험) 이야기를 좀 덧붙일까 합니다.
저는 서울신구초등학교 담임으로 있을 때인 1982학년도부터 "도깨비 방망이"란 것을 해마다 만들어 썼습니다. 헌 스케치북을 손나팔 모양으로 둘둘 말아 쥔 다음 그 둘레를 테이프로 감싸고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제자들 앞에 쳐들어 보여 주면서 "도깨비 방망이"라고 명명하고, 학기초에 제자들에게 그 용도를 설명하고,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얘들아, 이 도깨비 방망이는 학급 규칙을 어긴 녀석들의 엉덩이를 때리려고 만든 것이란다. 학기말에 이 도깨비 방망이는 제일 많이 맞은 어린이 대표 남녀 각 한 명과 학급임원 일을 한 여섯 명, 이렇게 여덟 명이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긴 녀석에게 주기로 한다.
이 도깨비 방망이로 맞게 될 벌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이름을 써야 할 곳에 이름을 안 썼을 때
둘째, 친구에게 욕설을 하거나 친구가 아주 듣기 싫어하는 별명을 자주 부르면서 놀려 주었을 때
셋째, 친구가 상을 타거나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데도 못 본 체하며 박수를 치지 않을 때
넷째, 친구에게 습관적으로 돈을 꾸었을 때……."
* 기타 6개 항목 생략.
* 숙제를 해 오지 않은 것, 준비물 미지참, 지각, 시험성적 불량 등등 자신에게만 손해일 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짓은 체벌대상이 아니었음.
* 1, 2학년 담임 때도 만들기는 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경남항공기능대학처럼 장식품 구실만 했음.
저의 사랑스런 제자들은 이 도깨비 방망이에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겼습니다. 예외나 편애가 없이 원칙대로 일관성 있게 실천했기 때문에 모두들 학급 규칙을 철저하게 잘 준수해 주었습니다.
부모에게 일러바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학기초에 학부모들에게 보낸 담임 명의의 가정통신문에서 머리와 얼굴 부분을 제외한 가벼운 체벌은 가해도 좋다는 동의를 받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흔히들 생각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나이가 어릴수록(초등학교일수록) 칭찬만 해 주고 징벌을 전혀 하지 않는 교육은 오히려 피교육자를 물렁팥죽으로 길러, 장기적으론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청산 의식을 뿌리 깊이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고통에 의한 손실감의 효과가 도덕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적당한 수준의 체벌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자아정체성이 확립되고 자율성이 높아지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체벌은 그다지 필요 없다고 봅니다. 말로 설득해서 안 되는 것은 체벌로도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실 벽을 마주 보고 부동자세로 서서 절대침묵을 지키는 벌도 "육체에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체벌"에 속합니다. 저는 이 벌을 "금족령" 벌이라고 제자들과 약속했습니다. 그 시간은 적으면 5분 내지 10분, 많으면 30분 정도가 알맞습니다.
* 약 한 시간쯤 벌 세우면 가장 효과가 크지만, 요즘은 학원에 갈 시간에 쫓기는 제자들이 많아서 실천하기 어려움
심한 고통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각종 체벌은 개판이 되어가는 이 S나라 이 사회의 질서를 잡기 위하여, 일선학교가 학부모 여론조사(앙게트 조사) 후, 강력히 실천해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약 20년 동안이라도.
이 나라가 보여 주는 최근의 극심한 중환자 증세는 가공할 정도인데, 그 뿌리는 "천상천하(天上天下)의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곱게 자란 ― 실제로는 들판의 잡초처럼 제멋대로 자란 ― 세대들이 만들어 가고 있다고 보아야만 제대로 된 국가위기 진단, 사회병리 진단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위험한 불을 하루 빨리 끈 후, 건강하고 정상적인 나라로 일신하려면 일선학교에서의 "체벌 무조건금지"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전국의 모든 초중등학교가 가정통신문으로 학부모에게 설문조사하여 체벌 문제를 결정하고, 학교 단위로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교육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들 자기 자식 실릴 궁리를 할 타이니까.
이 글,
다중(多重)주제의 글로 곁길을 헤매다 보니, 좀 길어졌군요.
미안합니다.
문갑식 기자님,
좋은 글 읽게 해 주시어 거듭 감사 드립니다.
계속 건강하시어
더욱 왕성하게 건필(健筆)을 휘두르시기를.
이 한반도에
이런 좋은 기사를 발굴해 내는 조선일보가
만일 없다면
이 나라는 벌써 전에 망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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