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재의 야만의 시대]흠집투성이 인물도 버젓이 인사청문회에 레임덕 자초하나

[미디어오늘 고영재 언론인 ]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어렵다. 그의 말은 옳고, 때로는 아름답다. 그러나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그 진의가 헷갈리기 때문이다.

최근의 두 마디 말도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지 가늠하기 쉽잖다. 광복절 65돌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다. 지난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조금 더 엄격한 인사 검증 기준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둘 다 의미심장한 시기에 던진 뜻 깊은 메시지였다. 그러나 어찌 들으면 뚱딴짓소리이기도 했다.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실천적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공정성은 문명사회의 으뜸 덕목인 터다. 그것은 짐승의 세계와 구분되는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원칙인 것이다. 거기엔 따뜻한 공동체,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 담겨 있다. 공정한 사회는 두 가지 핵심 지표가 판가름한다. 하나는 약자에 대한 배려의 수준이요, 다른 하나는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데 적용되는 공정성의 수준이다.

두 가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이명박 정권의 공정성은 결코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대통령은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이었다. 감세 조처의 혜택은 대부분 가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노사 갈등 현장에서 공권력은 언제나 경영자의 논리에 충실했다. 생존권을 걸고 처절하게 저항하는 시민들을 군사작전 펼치듯 밀어붙이다 엄청난 참사를 빚은 것도 이명박 정부였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제68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최극렬(오른쪽) 전국상인연합회장 등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과 제도의 운영에서도 공정성의 원칙과는 거리를 보였다. 대신 대통령의 독선이 두드러졌다. 국회는 '식물의회'로 전락했다. '대통령의 정책' 앞에서 한나라당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한 지역 출신 인사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적 권력놀음'을 벌이기도 했다. 서슬 푸른 검찰은 수사의 칼날을 휘둘렀으나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국민은 의심한다.

고위공직자 인사는 통치행위의 꽃이다. 고위공직자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대통령의 대리인이자 전령사인 터다. 공정한 인사는 공정사회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다. 그동안 이명박식 인사는 공정하지 못했다. '강부자 정권', '고소영 내각', 'S라인 인사'에 이명박 대통령 인사의 특성이 함축돼 있다. 인사 풀은 한 쪽으로 치우쳤고, 개인적 인연에 집착하는 인사 양태를 보였다. 시야가 좁고, 나라의 인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한창인 마당에, '엄격한 인사 검증 기준'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사청문회는 그동안 굳어져온 도덕성의 기준을 크게 후퇴시켰다. 대통령은 흠집투성이 인물을 인사청문회장에 내세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결격 사유는 실로 다채롭다. 그것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어온 한결같은 전통이다. 내정자들은 거의 대부분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병역비리, 금품 비리 의혹과 연루돼 있다. 그들은 마치 이명박 정부의 예비 각료 징표인양 불법과 비리 딱지를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젊고 참신한 인물로 내세운 총리 내정자도 예외가 아니다. 금품 관련 의혹이 그를 휘감고 있다. 그의 어설픈 해명에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물론 그 일차적인 책임은 그들 내정자에 있다.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자기 관리는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준법정신과 도덕성에 대한 인사권자의 불감증이다. 대통령은 국민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리 인사를 기용하는 일을 되풀이한다. 인물 검증에 나선 여당은 감싸기에 바쁘다. 위장전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어처구니없는 방안을 들고 나올 정도다. 대통령 인사의 불공정, 그 불공정이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태도다.

한때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의 치명적인 결격사유로 여겨졌다. 국무총리로 내정됐다가 위장전입 문제로 국회인준을 받지 못한 경우가 두 차례였다. 뒤늦게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물러난 부총리나 장관도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뿌리내릴 조짐도 보였다. 이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인물이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엄격한 인사 검증 기준이 아니다.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기준은 관례와 국민의 도덕적 눈높이와 여론이다. 대통령의 마음 속에도 인사 검증 기준이 명확히 자리잡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열쇠는 인사권자의 의지와 철학에 맡겨져 있다. 무슨 기준이 더 필요하겠는가. 더구나 작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낙마한 직후 시스템 정비를 약속하지 않았던가.

툭 터놓고, 저잣거리 세상 사람들의 속삭임을 전한다. "대통령이 범법을 일삼았으니, 아랫사람들도 준법성과 도덕성에 둔감할 수밖에." 자조어린 비판의 소리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에게 충심으로 충고한다.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권능을 아직 보유하고 있다. 큰 틀에서 사람을 보라. 결함투성이 인물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을 멈추라." 그리고 고위직을 꿈꾸는 이들에게 경고해 둘 것을 권한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담 풍' 하지 말라"고.

대통령은 어법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국민을 춤추게 할 수도,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다. 꼭 아름다운 말이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도 아니다. 진정성이 결여된 말은 죽은 말이다.

레임덕을 조심스럽게 들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레임덕이라는 게 뭔가. 권력자의 말이 통하지 않는 현상을 말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 레임덕을 재촉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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