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류는 왜 구주류의 지역감정 선동에 꼬랑지를 내렸나
민주당 김원기 고문이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당 밖의 신당세력과 접촉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이로써 반년 넘게 끌어온 신당 논의는 허무하게 막을 내릴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바닥을 헤매는 것은, 취임 후 그가 보여준 보수적 행보로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은 것, 그리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지루한 신당 논의로 당의 절반이 반노(反盧)로 돌아선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앞의 것은 대통령 자신의 오류로 볼 수 있고, 뒤의 것은 호남 지역주의라는 민주당의 태생적 수구성에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이다.
신당 논의의 무산은 한 마디로 '개혁'을 외치는 민주당이 정작 자기 자신은 개혁할 능력과 의사가 없음을 의미한다. 자신도 바꾸지 못하는 주제에 남들을 바꾸려 드니, 그들에게 개혁 당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뭔가를 바꾸려는 자는 일단 자신의 낡은 습속에서 벗어나야 할 터, 도대체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남에게 강요하는가. 대선 자금 해프닝, '굿모닝 시티' 로비 사건, 그리고 허무하게 꼬리 내린 민주당의 신당 논의를 보면서, 수구세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노무현 죽이기>라는 책이 나왔다. 누가 노무현을 죽이는가. 저자는 여러 세력을 지목하면서 정작 중요한 세력을 빠뜨렸다. 국민경선으로 뽑은 제 당의 대선후보를 열심히 흔들어 대던 분들, 대통령의 인사에 반발하여 '호남홀대론' 퍼뜨리며 지역감정 선동하던 분들, 기득권을 위협받자 고향 내려가 장외집회 열며 열심히 세 과시하던 지역주의의 화신들. 모두 민주당 내부에 있다. 지금도 대통령에 대한 가장 험한 소리는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작 '노무현 죽이기'의 선봉에 선 이 분들을 너그럽게 끌어안는다. 지금 뭐 하자는 건가?
김근태 의원은 "위기" 상황 운운하고, 한화갑 전대표는 반탁운동에 나섰다. 당이 대통령의 신탁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DJ가 이끌던 민주당은 '신탁통치'도 아니고 그냥 대통령의 직접 통치가 아니었던가. 그나마 그게 신탁통치의 수준으로 내려 간 것은 DJ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다음의 일이다. 그런 발언을 하는 한화갑씨야말로 민주당 내 DJ 신탁통치의 화신이 아닌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대통령, 그 동안 조국과 민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으니, 이제 그 분 그림자는 정치권에서 치우고 좀 편히 쉬게 하면 안 되는가?
"DJ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 배은망덕하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 동안 민주당에서는 국회의원을 국민이 아니라 김대중씨가 일괄적으로 뽑아주었던 모양이다. 그걸 이제서야 이런 식으로 실토를 한다. 사춘기쯤 되면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벗고 제 인격을 스스로 형성하게 된다. 우리 반탁 운동가께서는 언제나 사춘기를 맞아 인격적 독립성을 획득하게 될까? 하긴 이게 어디 성장심리학의 문제인가. 지역 주민을 볼모로 잡아 놓고 DJ 무릎에 앉아 의원이 될 수 있었던 대꼬챙이들의 기득권의 문제일 게다.
인적 청산도 안 되고, 정당 개혁도 안 된단다. 한나라당 내의 개혁이 무산되고, 민주당의 신당 논의마저 흐지부지된 것은 우리의 보수 정치판에 자정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능력 뿐 아니라 '의지'도 없다. 가령 대선 자금을 둘러싸고 서로 그 난리를 쳤어도, 정작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한 입법에는 여야 모두 관심이 없지 않은가. 이로써 우리가 확인한 것은,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결코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의 정당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즉 보수정당은 모두 영호남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기득권 층의 당이라는 사실이다. 시민들은 보수정당의 볼모 신세를 벗고, 다음 선거에서는 반드시 깨끗한 진보정당에 투표를 하시라.
자신도 개혁하지 못하면서 '개혁'을 외치고, 시민의 참여를 가로막으며 '참여'정치를 하잔다. 하다 못해 한나라당에서도 의원들이 당을 나오는데, 정작 요란한 구호를 외치는 민주당의 신주류는 왜 뛰쳐나오지 못하는 걸까?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루던 가치는 이제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의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보신주의', 당내의 헤게모니를 쥐려는 추접스런 '당권싸움', 노골적인 지역주의 선동을 동원한 '기득권 수호'뿐이다. 집권 5년만에 민주당은 썩었다는 면에서 한나라당과 격차를 크게 줄였다. 5년 뒤 이 정권이 끝난 후 민주당의 몰골은 얼마나 볼 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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