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체제 비판하는 지도자 나와야”
서울대 이영훈 교수 국비협 토론회서 역설
주제발표 1 한국 정치 혼란의 근본 원인으로서 자유주의의 결여
◇ 李榮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07년도 한국 정치의 전망은 한 마디로 혼돈 그 자체다. 혼돈의 근저에는 자유의 가치, 즉, 자유주의의 결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궁극의 가치로 믿고 추구하는 일련의 정책체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사유체계를 말한다.
자유주의의 적은 민족과 국가 자체를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간주하는 전체주의다. 오늘날 북한의 김정일 수령체제는 개인ㆍ자유ㆍ사유재산ㆍ법치 등과 같은 현대 문명의 기초 요소는 단어로도 존재하지 않는 최악의 전체주의다. 그 점에서 북한의 전체주의적 수령체제는 본질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는 북한 전체주의의 반문명성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전의는커녕 한국의 정치는 적을 선의의 협력자로 착각하고 있으며 동맹을 성가신 훼방꾼으로 못마땅해 하고 있다. 자유주의의 결여가 그 근원이다.
내년 2008년이면 건국 60주년이다. 지난 60년의 건국사에서 대한민국의 지배적인 교육이념은 민족주의였다.
고도경제성장을 추구한 1961-1987년간의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와 무관하였다. 권위주의적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또 고도경제성장을 위한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조국근대화’, ‘민족적 민주주의’ 등의 온갖 정치적 수사와 더불어 한껏 동원되었다. 1
967년에 공포된 국민교육헌장에 의하면 한국인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1972년의 10월 유신을 강행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그를 위한 남북대화를 ‘민족의 소명’으로 선포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한 차례 더 민족주의로 덧칠을 하는 것은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이루어진 1980년의 헌법 개정에서이다. 여기서는 헌법 제1장 총강의 한 조로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들어갔다. 이 문화적 민족주의 규정 역시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온전히 계승되었다.
민주화의 시대를 연 1987년의 개정헌법이 권위주의 시대에 헌법에 삽입된 민족주의 규정을 충실히 계승하였음은 이른바 민주화운동세력의 정신적 토대가 자유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였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민주화운동세력에 있어서 민주화란 어디까지나 정치권력을 향한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였지, 궁극의 실체는 개인이요 궁극의 가치는 자유라는 전투적인 자유주의 이념 그 자체는 아니었다. 실제로 민주화운동은 처음부터 민족주의운동이었으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민족통일운동이었다.
중산층의 자유주의 결여가 문제
◇ 李榮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고도경제성장의 은택으로 성립한 한국의 중산층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공백상태나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권위주의시대에 정치적으로 무임승차한 계층으로서 정치적으로 무책임하며 기회주의적 속성을 특질로 하였다. 한국 중산층의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지금도 한국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건강한 토대를 제약하고 있다. 민족주의를 제외한다면 정치적 이념에서 거의 공백상태나 다를 바 없는 한국 중산층의 정치적 선택은 너무나 안이하게 기득권의 철폐를 외치는 좌파 민중주의에 영합하였으며, 너무나 감상적으로 ‘우리민족끼리’라는 통일구호에 환호하였다. 1992-1997년 김영삼정부의 과도적 혼란을 겪은 다음 지난 10년간 좌파 민족주의 통일운동 정치세력이 정권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중산층의 이러한 정신적 공백과 혼란, 다시 말하여 시민적 중산층 고유의 건강한 자유주의의 결여 때문이었다.
지난 60년의 건국사에서 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전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등, 건국을 주도한 정치세력의 정신세계는 분명히 자유주의적이었다. 한국경제의 기적적 성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자각하고 의지적으로 실천하였던 훌륭한 정치적 리더쉽에 공로가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자유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권위주의적 정치과정을 통해 구축되었다. 마찬가지 이야기를 지난 10년간에 걸친 좌파 민중주의 통일세력의 집권기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저간의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혼돈은 한국의 중산층을 자유주의의 신봉자로 키운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장담이야 할 수 없지만, 2007년 연말의 대선은 한국 중산층의 성장하는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집권으로 결말이 날 것이다.
대선 승리의 최대 불안요소는 북한
그렇지만 그러한 낙관으로 2007년의 한국 정치를 전망할 수 있을까. 낙관을 불허하는 최대의 불안 요인은 북한 변수이다. 북한의 수령체제는 어떤 경우에도 어렵사리 취득하기 시작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지배자들에게는 도박을 감행해도 좋을 기회이며, 이에 핵의 완전한 보유를 위해 요구되는 추가 핵실험에 주저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 말의 대선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이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북한 수령체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군사력 이상으로 무서운 위협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경제력은 국민소득 기준으로 북한의 50배이다. 그런 경제력과 그에 뒷받침된 군사력의 한국이 ‘우리민족끼리’의 미망에서 벗어나 ‘북한 동포에게도 자유를’이라는 정치적 압박에 주저하지 않는다면, 지난 수 십 년간 북한 동포를 노예상태로 지배해 온 북한 수령체제의 해체는 불가피한 역사의 선택이 될 것이다.
이미 공언하고 있듯이 평양정부는 자유주의세력의 집권을 저지하지 위해 2007년의 한국 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것이며, 그 결과는 그야말로 예측 못할 정치적 혼란일 수 있다. 그에 맞설 한국 정치의 선택은 자유주의의 전투적 실천, 그것 이외는 아무 것도 없다. 왜 한국 정치에서는 북한의 야만적인 수령체제를 정면 비판함으로써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해 가려는 용기 있는 정치가가 나타나지 않는가.
미래한국 2007-01-10 오후 3:20:00
603374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