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느 날 그 의자의 고마움과 그 의자를 만든 사람의 착한 마음씨를 알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8월 31일(월) 작업장인 K초등학교 운동장의 은행열매 크기 이상의 돌을 치우는 것이 희망근로 하루일로 맡겨졌다. 운동장의 넓이는 남북으로 80m, 동서로 160m쯤 된다. 오전 8시부터 50분간 교문 앞 2차선 도로를 건너는 어린이와 출근하는 선생님 자가용, 통학용 학부모 자가용, 우유배달차 그리고 급식용 식품운반차 등을 위한 교통정리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작업에 들어갔다.

카트에 바켓츠를 싣고 남북으로 80m씩 카트를 끌고 왕복하면서 눈에 보이는 은행열매 크기 이상의 돌을 집어서 바켓츠에 담았다. 그런데 지표면에 솟아있는 크기는 은행열매만하나 뿌리가 땅속에 박혀 있는 돌들이 의외로 제법 있었다. 그러한 돌들은 호미로 캐어 뽑았는데 대부분 감자정도의 크기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페트병에 담아 온 얼음물을 마서됐지만 아직까지 8월 염천인데다가 운동장에서 지열까지 올라와 땀이 비 오듯 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단순노동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한번 가면서 폭 1m를 커버하면 80m의 거리를 160회 이동해야 하므로 총 이동거리는 12.8Km이다. 카트를 10m쯤 끌고 가다가 놓고 1m x 10m 넓이의 돌을 주우므로 1,280번이나 카트를 놓고 허리를 구부려 돌을 줍고 다시 카트를 잡고 끌고 가는 모양새이다. 물론 돌을 캘 적에는 쪼그려 앉아서 캐고 다시 일어난다.

오후 5시 30분에야 일을 마치고 탈의장에 가니 숙직기사가 “아니 쉬엄쉬엄 하지 얼굴이 말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사워를 마치고 정수기에서 마실 물을 페트병 한 개에 담아 메고 퇴근하기 위해 원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평소에는 별로 힘들지 않던 그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찼다.

기진맥진하여 고갯마루에 오르니 그 나무널빤지 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평소에 볼품없던 그 의자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냉수로 목을 축이면서 그제서여 그 의자가 그기에 있게 된 의미를 깨칠 수 있었다. 건강하거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원터고개 넘기가 별 것 아니지만 병약자나 나이 드신 노인들 또는 지치고 수고한 자에게는 힘든 고개이고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의 안식을 위하여 어느 선한 사람이 정성을 다해 그 의자를 마련했지만 그 역시 가난한 자라 나무널빤지를 깔아놓는 정도밖에 더 이상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의자를 조잡하고 불결하게 생각했던 나의 마음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웠고 그 의자를 마련해준 ‘어느 가난한자의 조그만 한 선행’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퇴근길에 그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2009. 10. 23 배성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