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실용은 교류 전면단절 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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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1993년 6월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는 결코 악수를 할 수 없다.”고 강경한 방침을 천명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북한은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만을 상대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본격화 했다.
당시 남북관계는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어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었으나 북한이 1993년 3월 핵 위기를 조성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준 전시상태를 선포하여 한반도에 긴장상태를 고조시킨데 대한 대응조치로 김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상호 체제 인정 및 존중, 내부 문제 불간섭, 비방 중상 중지, 파괴 전복 행위 금지, 정전상태의 평화상태 전환, 무력 불사용과 무력 침략 포기, 대립되는 의견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 명시 등이었다.
부속 합의서에서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 준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대화는 남북기본합의서를 근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와 같은 의사 표시는 2000년 6.15공동선언과 지난해 10.4 남북선언을 뛰어 넘어 기본합의서 정신을 대북정책의 바탕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지난 10년간 진보성향의 두 정권에서 대북정책의 기조를 이룬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의 파기를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적 대북접근의 실체(비핵 개방 3000)가 들어나기도 전에 군사적 대응조치를 포함한 초강수를 두고 있다.
지난 3월 27일에는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당국자 11명을 개성에서 추방하고, 다음날에는 서해상에서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가 하면, 4월 1일자 노동신문에서는 이 대통령을 “역도”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북한의 강경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한 가운데 무반응을 보이자 북한의 태도에 다소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대 부위원장은 평양 노동자회관에서 열린 “조국통일을 위한 전 민족 대단결 10대 강령”발표 15돌을 기념하는 평양시 보고회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서 그 이행을 떠나서는 남북관계와 조국통일과 관련된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하고 두 선언에 기초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촉구하였다.
북한의 10대 강령은 1993년 4월 6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북한의 통일강령으로 1)자주 평화 중립적 통일국가 창립, 2)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한 단결, 3)공리 공영 공리를 조국통일 위업에 복종, 4)분열과 대결을 조장하는 정쟁 중지, 5)북침과 남침, 승공과 적화를 가시고 신뢰와 단합, 6)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며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7)개인과 단체가 보유한 물질적, 정신적 재부 보호, 8) 접촉 내왕 대화를 통한 신뢰와 단합, 9)북과 남 해외의 전 민족의 연대성 강화, 10)민족 대단결과 조국통일 위업에 공헌한 사람의 평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강령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불과 1년 4개월 만에 나온 것으로 기본합의서 내용을 그대로 살린 북한의 행동강령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2개의 남북선언이 10대 강령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하고 이의 실천을 주장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중시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핵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북한이 모를 리가 없다. 내일(8일)에는 트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핵 폐기 신고서 문제로 싱가포르에서 만난다. 북한은 핵 폐기를 어느 시점에서 신고하느냐를 놓고 이해득실을 타질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유리한 국면이 도래할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며,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을 것으로 계산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그렇게 느긋하게 실리를 챙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춘궁기를 맞아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90년대 초에서 중반을 넘어서기까지 식량난으로 배급이 중단되고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고난의 시기를 겪은바 있다. 김일성은 식량 부족으로 배급이 중단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94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의 아사자는 300만 명에 육박했다는 설이 신빙성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2006년과 지난해의 수해로 쌀 생산량이 줄었고 북한 지역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비공식적 장마당에서 쌀 1kg에 1.700 북한원에 달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지난 해 4월 1.000원 내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70% 정도가 급등한 것이다. 작년에는 일부 지역에 군량미를 풀어 가격안정을 도모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조짐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국제곡물가격 상승과 중국의 대북식량 지원의 차질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제 쌀 가격은 금년 1분기에만 42% 상승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하고 있다. 쌀 가격 상승요인은 인도, 중국 등의 경제발전에 따른 소비 증가와 주요 쌀 수출국인 인도, 중국, 베트남 등이 전략 비축 분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출제한조치를 취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2일 올해 세계 쌀 수출량은 3.5% 줄고 소비량은 2.6%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1위 쌀 수출국인 중국은 지난 달 국내의 안정적 쌀 수급을 위해 올해 식량 수출을 원칙적으로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2위인 인도의 쌀 수출협회(AIREA)도 2일 정부의 쌀 수출규제로 올해 쌀 수출량을 지난해 550만 톤의 4.5%에 지나지 않는 25만 톤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3위인 베트남은 최근 신규 쌀 수출계약을 6월까지 중단했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최악의 수준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쌀 비축량이 최근 2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중국이 올해 식량긴급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유엔이 전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의 대북한 식량지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미국이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총량으로 100만 톤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짐작되나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은 지난해 468만 톤으로 총 수요량인 416만 톤을 제하면 12.5% 정도 여유가 있고 의무수입량 24만 6000톤까지 있어 50만 톤 정도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되고, 미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50만 톤을 약속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 폐기 신고 지연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에도 실용을 내 세우고 있다. 북한 주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명분과 실리도 중요하지만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실용적인 대북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북 쌀 지원을 차관으로 지원해 왔지만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해 온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비료를 차관으로 하고 쌀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 동포를 생각하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지 않을까.
내일 북미 싱가포르회담이 핵 폐기 신고에 진전이 있어 6자 회담이 재개될 경우 우리는 식량과 비료지원에 있어 적기를 놓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에 인권이 없음을 세계에 호소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북한 동포의 삶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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