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논의에 있어서 형사소송법 195조와 196조의 개정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경·검 양측이 이 두 조항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이것이 검사를 유일한 수사의 주체로 규정하고 검사와 경찰을 상명하복관계로 설정하는 근거 규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개정하여 경찰의 수사 주체성을 인정하고 양 기관의 관계를 대등 협력 관계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헌법을 비롯하여 모든 규범은 시대의 산물로서 역동성을 갖는다. 어떤 규범이든 더 이상 구체적인 시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되면 변경 또는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상에 검사의 유일한 수사 주체성과 검경의 상명하복관계가 규정되게 된 경위와 배경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를 현재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보는 일은 긴요하다 할 것이다.
규범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
형사소송법은 1954년 제정되었으나, 검경의 상명하복관계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일합방 후인 1912년 조선형사령에 의해 일본 형사소송법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일본 형사소송법(명치형사소송법과 대정형사소송법)은 대륙법계의 직권주의적 형사절차를 계수한 것으로서 검사와 경찰이 상명하복관계로 설정되어 있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조선형사령은 일본 형사소송법에는 없는 다수의 특별규정을 둠으로써 일본보다 막강한 강제처분권을 조선의 검사에게 부여했다. 이로써 조선이 계수한 대륙법계의 검사제도는 그 본래의 견제장치가 사라진 거대 권력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이것이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군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일본과 조선을 점령한 미군은 검찰에 의해 지배되었던 종전의 수사제도와 인권침해실태를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일대 개혁에 착수하였다. 개혁의 방향은 수사는 경찰에게 전담시키고, 검찰은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공판정에서의 사실입증에 주력하는 미국식의 인권보장적 형사절차를 이식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 미군은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948년 영미법의 당사자주의적 소송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일본 형사소송법을 제정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경찰은 제1차적 수사기관으로서 본래적 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당사자로서 공판활동에 주력하되 다만 공소유지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보충적·보정적 수사를 담당하는 제2차적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한국에서도 시도되었다. 미군정은 1945년 10월 30일 군정법령 제20호에 의해 경찰에게 일부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하고, 나아가 그 해 12월 29에는 '법무국 검사에 대한 훈령 3호'를 통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고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부여하게 된다. 이 훈령은 "검사의 선결직무는 관할 재판소에 사건을 공소함에 있음. 세밀한 조사는 검사의 책무가 아님"이라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의 개혁 의도는 끝내 좌절되었다. 1948년 8월 2일 '남조선 과도정부 법령 213호'로 검찰청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의 근거가 되어 왔던 '법무국 검사에 대한 훈령 제3호'가 폐지되고 검사가 사법경찰관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갖게 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수사주재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검경관계는 일제 식민 지배의 잔재
일본에서와는 달리 미군정의 개혁 의도가 실패한 이유는 당시 한국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독차지하던 판검사 자리는 해방 이후 독립투사들을 변호하였던 한국인 법률가들로 충원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경우에는 일제의 경찰업무에 종사하였던 한국인 경찰관들을 다시 채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 많은 숫자를 대체할 인적 자원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해방 이후 혼란한 치안질서를 조속히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찰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매우 약하였고, 이러한 국민정서를 등에 업은 검찰의 집요한 설득에는 미군정 당국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찰조직에 대한 이러한 불신감은 제정형사소송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입법자들도 영미법에서는 권력의 분산을 위하여 수사권은 경찰이 갖고 검찰은 기소권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기소권을 갖는 검사가 수사권까지 행사하는 것은 검찰팟쇼를 초래할 것이라는 염려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조, 196조가 규정되게 된 것은 검찰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라 경찰조직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이제는 검경관계 새롭게 정립할 때
지금까지 형사소송법 제195조, 제196조의 탄생 경위와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의 검사제도는 일제가 대륙법계의 검사제도를 식민통치의 용도에 맞게 왜곡한 것이었고, 이것이 해방 이후에도 청산되지 못하였던 것은 당시 시대 상황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다.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형사사법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화하였다. 경찰조직에 대한 불신 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독점한 검찰권의 남용과 부패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직권주의에 치우친 검사 주도의 소송구조는 국민의 높아진 인권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법부는 공판중심주의의 강화와 사법참여제를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을 추진중이다. 바야흐로 지금의 시대 상황은 형사소송법 195조와 196조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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