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단팥죽 2005/12/30 12:47 추천 1 스크랩 0
조선 블로그에서 <진실>을 감히 입에 담으면서
황우석 박사님을 옹호하던 사람들의 글을 지금 다시 읽으니 가관이더군요.
그래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다만 시간을 필요로 할 뿐이지요.
MBC 피디 수첩.
참이나 대단합니다.
그대들이 있기에......숨겨졌던 진실이 조금은 그 모습을 드러내며.......
그대들이 있기에....... 넓었던 거짓의 자리가 조금씩 좁혀질 것입니다.
MBC 피디 수첩.
진실을 밝혔던 그대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대들을 존경합니다.
차가 벌교를 지날 무렵부터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살아 오면서 필요에 의해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 하여 잊고 살아왔던 지명들이 도로 표지판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던 까닭이다.
도화면이니 운대니 하는.
그래, 고흥에서 순천을 가려면 툴툴거리는 동방여객 버스를 타고 이 곳을 지났었지.
순천 여중 입학 시험을 치러 가던 30 여 년 전의 어느 눈 내리던 겨울을 갑자기 기억한다.
동방여객 버스 안에서 난 얼마나 움츠려들었던가.
앙상한 포플러 가지 위에 조금씩 쌓이던 눈.
이윽고 폭설로 변해 열세 살 계집아이의 가슴을
미지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압박하던 내 최초의 나들이.
그래, 이곳을 지났었지.
얼마만의 귀향인가?
콘솔박스에서 콤팩트를 꺼내 날 확인한다.
삶에 적당히 지친 사십 대의 평범한 여자.
내가 고향을 찾지 않았던 세월만큼 아니 만나고 살아왔던
내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맑디 맑은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다.
고향을 찾는 우리들의 감정은 그만큼 고조되어 있다.
그들을 만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난 지금, 그들과 함께
내 영혼의 밑바닥에서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날 괴롭히던
그리움의 실체들을 확인하러 귀향하고 있는 길이다.
고흥.
아아, 나의 고흥.
난 고흥이란 지명을 삼십 대 이후,
성숙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발음할 수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언제나 고흥을 발음하려면 목젖이 아렸다.
한글을 몰랐던 어린 시절.
"우리가 사는 디가 공이란가? 이런 공이란가?"
난 가끔 내가 가져 놀던,
조잡한 빨간색 꽃이 그려진 고무공을 들어보이며 어른들에게 묻곤 했었지
난 지금 그 곳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내게 있어서는 그 곳이 그렇게 멀었단 말인가?
내가 가 본 지구상의 몇 나라 중에서 가장 멀었던 남미의 멕시코를 떠올린다.
하루의 낮과 밤을 그리고 낮을 비행기 속에서 보내고, 또 비행기를 바꿔 타면서도
스페인에게 정복당하여 망가진 민족의 참담한 역사가 아름답고 슬퍼서
난 멕시코를 두 번이나 여행한 적이 있다.
내 가치관과 이념, 그리고 우리 민족 역사의 정체성에 의해 혼란스러웠을 때,
멕시코는 내게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난 지금 내가 찾아가고 있는 나의 고향이
멕시코보다도 더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 지구상에는 실재하고 있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얼마를 더 가야 고흥일까 하는 짧은 순간 길 오른 편에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병원이란다.
난 잠시 당황한다.
한 없이 길기만 하던 먼지나는 신작로.
하늘을 찌르던 포플러 나무의 장엄한 열병식.
그리고 중학교, 그래, 성중학교였었지. 지금은 고흥 중학교로 바뀌었단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던 길.
그런데 고흥이 다가왔을 텐데 하는 순간 오리정을 지났단다.
십리 (4km)의 반이래서 오리정이랬지?
절며 절며 걷다가,
부옇게 흙먼지를 덮어쓴 길가 풀섶에 털썩 주저앉아
들국화 한 송이 꺾어서 꽃잎을 헤아리다가 다시 걷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나오던
들판 가운데 그 한적한 학교. 성중학교
그 먼 길을 마흔 네 살 나이엔 입안에 머금었던 차 한 잔 넘길 시간보다 짧은 순간 에 지나친다.
오리정 왼 편을 잔잔하게 흘러가던 그 강은, 그 강은.
하교 길, 고흥 여중을 지나 그 강 위에 가로놓인 징검다리를 건널랴치면,
햇살에 반짝이던 은빛 물고기들.
이렇게 하찮은 도랑이었던가?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불쾌하게 숨어 있기 마련인, 이렇게 하찮은 도랑이었던가?
난 기억의 부정직에 대해 잠시 절망한다.
사랑한다고,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귓부리가 타버릴 만큼 속삭이던 내 남자가
어느 날 아침, 홀연히 떠나버린 순간보다 더한 배신에 의한 절망감이 날 지배한다.
이 곳이 그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인가?
당혹스럽다.
창신당이란 간판이 웅장하던 문구점이 있었지.
등교길 그 곳에서 색종이를 사고, 도화지를 사고, 연필을 사고, 공책을 샀었지.
공책을 "장면"이라고 불렀던가?
30 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난 공책을 의미하는 "장면"이란 고흥만의 사투리를 입안에서 굴려본다.
그 창신당 네 거리.
오리정 초입께.
난 나의 귀향을 쉽게 후회하기 시작한다.
추억이란 추억으로 남아야 아름다운 것.
고향을 찾지 말아야 했어.
내 그리움의 실체들은 이렇게 남루하기만 한데,
내가 다가가기엔 너무나 눈부시어
감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떨면서 이제껏 살아왔던가?
광주에서 발행하는 지방지의 기자 **를 만나고,
고흥에 대한 내 기억을 최초로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
현대식 병원의 원장 선생님인 **을 만나고,
성공한 사업가 **을 만나 점심을 먹는다.
고흥의 옛 모습이 그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는 차를 몰아 고흥의 곳곳을, 골목골목을 굽이굽이를 안내한다.
기억 속의 모습과는 판이하거나 축소된 내 고향의 모습이 드러난다.
목마를 만큼 그리웠던 모든 것들.
돌부리 하나, 다리 하나, 나무 하나.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은 없다.
늙은 내 어미의 자궁 속에 다시 들어간 듯,
익숙하고 편안하면서도 젊었던 어미의 자궁만을 기억하고 있는 난 아쉽다.
그 아쉬움을 헤집고 고향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친구들을 통해 스물거리며 올라온다.
귀가를 서두르는 우리를 한사코 붙잡는 고향의 옛 친구들에게서
난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으며,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그리워했던 것이 무엇인가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래, 내 고향의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었어.
그 진한 그리움의 실체는.
이것이었어.
이 인정이었어. 친구들의 따스한 정이었어.
30 여 년만에 내 앞에 다시 나타난 봉황산의 규모나,
남계수의 모습이 아니라 고향사람들의 포근한 정이었어.
내 그리움의 실체들은.
외형적인 고향의 모습에 잠시 실망했던 난,
내 고향 고흥이 가슴에 품고 있던 넉넉하고 포근한 사랑을 느끼면서
늙은 어미의 젖가슴을 만지듯 편안해진다.
젊었던 어미의 젖가슴만을 기억하면서,
늙은 어미가 지닌 그 왜소하고 까칠한 감각에 실망하다가
그 안에 숨겨진 무한한 사랑을 고향 친구들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난
나의 귀향을 잠깐 후회했던 어리석음에 실소한다.
고향이 무엇인지 마흔 네 살의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날이었다.
한도 없이, 한도 없이 그 그리움의 갈증을 해소한 날이었다.
내 삶이 적막하고 황량한 어느 날,
남루한 모습으로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와도 고향은
언제나 따스한 사랑으로 맞아 줄 거라고 믿으면서 난 다시 귀가를 서두른다.
고향의 인정으로 충분히 훈훈해진 나.
그리워지면 언제나 찾아오라는 고향 친구들이,
그 보석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의 고향.
아아, 나의 고향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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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6-7년 전쯤이던가?
고향을 떠난 뒤 30여년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하고 쓴 글입니다.
초등학교 동문 카페에 올렸던 글인데,
그 이후에 <고흥신문>의 추석날 특집으로 다시 올려진 글이기도 합니다.
그랬습니다.
난 열 세살 어린 나이로 고향을 떠난 첫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순천여중에 입학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지요.
나는 이미 대도시가 무시험 진학으로 바뀌고 난 뒤의 마지막 시험세대였습니다.
제가 순천여중에 합격하자 우리 가족은 이내 고향을 떠났습니다.
설혹 순천여중에 불합격하였다고 해도 고향을 떠났을 겝니다.
경찰과 교사였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도 그해에 순천쪽으로 모두 발령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그리고 어머니는 3월 신학기에 발령이 났습니다.
고향과 단팥죽.
제목을 이렇게 정해놓고선
아직 단팥죽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제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단팥죽을 먹었다.
태어나서 두번째로 먹어 본 단팥죽.
어른들을 위하여 설탕을 적게 넣은 죽을 따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내 입에는 너무 달아서 두어 숟갈 뜨고 숟가락을 놓았지만 내내 속이 메슥거렸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제외하곤 단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순천 여중 시험치던 날.
처음으로 단팥죽을 먹었다.
4교시까지 시험을 끝내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굳게 잠긴 교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다른 부모들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엄마.
날 감싸 안으면서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으셨다.
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단팥죽"이라고 말했다.
단팥죽.
당시 내가 즐겨 읽었던 <새소년>이나 <소년세계> 그리고 <어린이>란 소년잡지에
가끔 <단팥죽>이 나왔다.
그들 잡지에 나오는 아이들의 삶은 나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삶들이었다.
아이스크림, 바나나, 소파, 침대, 안으면 눈을 감는 프랑스 인형 등등.
내 삶 어디에도 발견할 수 없는 숱한 것들이 그 안에는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단팥죽>이었다.
순천 고모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순천여중으로 가면서
나는 어느 제과점 출입문에 써붙인 <단팥죽>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고모네는 당시 여수 순천 지역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는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도매상이면서 소매상도 겸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순천, 광양, 벌교, 여수, 고흥 지역의 약국들은 대부분 고모네 약국에서 약을 사가서 판다고 했다.
<회생당 약국>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는 전남 순천 회생당 약국의 명성을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 부터 35-6년 전의 순천.
당시의 순천에서 회생당 약국은 가장 최신식의 3층 건물이었다.
그리고 이 글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내 고모는 <순천미인>이라고 찬사를 받는 아름다운 귀부인이셨다.
전남에서 순천은 <미인>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 회자될 만큼 순천 지방에는 미인들이 많고,
여수는 경제활동이 왕성하고,
벌교는 깡패가 많았다고 한다.
미인들이 많다는 순천에서도 <순천미인>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우리 고모는......참이나...... 고운 분이셨다.
오래 전의 영화배우 <전양자>씨와 흡사한 분이셨는데
우리 고모라서 그런지 내 눈에는 전양자씨보다 우리 고모가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마흔 아홉 해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모든 영화와 소설이 아닌 실생활에서 순천고모처럼 곱고 우아한 귀부인을 본 적이 없다.
그 분의 작은 손놀림 하나까지. 사용하시는 어휘하나까지 참이나 곱고 우아한 분이셨다.
어쩌면 내가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의 귀부인인지도 모른다, 우리 순천 고모는.......
당시의 순천에서 회생당 약국 사모님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고흥이라는 작은 고장에서 도시를 처음 찾은 촌닭이- 순천여중 시절 내 별명이 고흥 촌닭이었다-
그 도시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건물로 들어가서
건물 뒷편에 있는 일본식 살림집에서 하룻밤을 잤으니........
완전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렇게 넋이 나간 상태에서도 어느 제과점 출입문에 사선으로 붙어있던 <단팥죽>이라는 글자는 보이더라.
도시의 화려한 모습에
-특히 고모네 약국 2층의 수세식 화장실 변기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나에게 <단팥죽> 역시 도시의 그 무엇이었다.
엄마가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
서슴없이 <단팥죽>이라고 대답했던 이유도 ........
단팥죽은 도시의 그 무엇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내가 여태까지 접해보지 못한 책 속의 음식이었다.
- 이 가시내는 무슨 단팥죽 타령이래? 지금 단팥죽을 먹으러 어디로 간단 말이냐?
엄마가 떡국이라던가 자장면을 먹자고 날 달랬을 때,
나는 어디에서 단팥죽을 파는가 조근조근 설명했다.
나는 그 날의 주인공이었기에 어찌 되었던 그날 혼자서 단팥죽을 먹었다.
그날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래서 내가 순천여중에 합격이라도 해준다면
시내 한 복판에서 발가벗고 춤이라도 출 것 같았던 우리 엄마.
단팥죽이 나왔을 때, 난 무척 실망했다.
조그만 그릇에 나왔기 때문이다.
에게~, 숟가락도 밥숟가락이 아니고......
집에서 손님이 올 때 아주 가끔 사용하는 커피잔에 올려 놓는....... 손톱만 한 숟가락이었다.
나는 단팥죽이 뜨거워서 조그만 그릇에 몇 번이나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나의 실망을 달랬다.
그런데 그것뿐이라는 것을 단팥죽을 단숨에 먹고 나서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실망은 건데기가 없다는 것이다.
단팥죽에는 모찌가 들어 있다고 했는데
모찌는 에게~.
이것도 모찌라고 말할 수 있나?
난 적어도 내가 밥을 먹을 때 당연하게 따라오는 국그릇 정도는 되어야지.
그 그릇 안에는 숟가락 가득 차는 모찌가 팥죽에 둥둥 떠 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모찌가 아닌 무슨 건데기는..... 할머니께서 동짓날 끓여주시는 새알보다 적게 들어 있다.
우리 할머니는 무척 손이 컸다.
깍두기도 다른 집 깍두기보다 컸고,
쇠고기 국을 끓이면 살점이 너무 커서 엄마랑 다투시곤 했다.
엄마는 고기를 크게 썬다고 늘 식모 언니를 나무래셨고,
할머니는 식모 언니에게 고기가 작으면 씹는 기분이 없다고 무조건 크게 썰라고 하셨으니......
동지 팥죽에 들어있는 새알도 무척 크고....... 아무튼 손이 무척 컸는데
그런 일로 엄마는 늘 속상해 하셨던 기억이 난다.
맛은 기가 막혔지만,
그 것은 점심을 대신한 <식사>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난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점심으로 단팥죽 한 그릇을 먹고, 오후 시험을 치는 내내 배가 고팠다.
.
.
.
내가 순천 여중에 합격하고, 겨울방학을 하면서 완전히 떠났던 고향, 고흥.
이미 팔아버렸기에 다른 사람들이 모든 공간의 주인이 된 고향집의 안방만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면서
고흥동교의 교사였던 엄마와 졸업을 앞둔 나.
둘이서만 그 해의 2월을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며칠 후에 엄마도 순천 지역으로 발령이 났기에
우리 가족은 고흥과 완전한 결별을 하였다.
고향에서의 생활이 할머니께서 끓이신 동지팥죽이었다면
순천 여중 3년 동안의 생활은 단팥죽이었다.
참이나 부끄럽고 치욕적이었지만 순천여중 시절 당시의 내 별명은.......
<고흥 촌닭>이었다.
꽤나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께 사랑을 받는 나를
나보다 공부도 못하지만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도시 아이들에게서 나는 <고흥 촌닭>이라는
멸시를 받으면서 여중시절의 3년을 보냈다.
그 멸시 속에서도 <학생회 부회장>도 하고.......
졸업할 때는 도지사상 다음인 순천시장 상도 받으면서 말이다.
<고흥 촌닭>은 여중 시절 동안 <고흥>이라는 글자만 봐도 경기가 들 만큼 몸서리쳤다.
여중시절 3년 동안, 나는 내 고향이 순천이 아니고 <고흥>이라는 사실이 저주스러웠다.
나는 내 고향 <고흥>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그 작은 소녀가 당시에 가장 공포를 느꼈던 말.
<고흥>
아아. 나의 고향 고흥.
<고흥>이라는 글자를 꿈에 만날까 두려워하면서
나는 순천여중 시절 3년을 지나면서 고향을 완벽하게 잊고 살았다.
억지로라도 잊고 살아야 했다.
여고를 부산으로 진학하면서
고흥 촌닭>은 말만 다를 뿐 자신에게
<전라도 아이>라는 꼬리표가 새롭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흥 촌닭>이라고 경멸하던 아이들을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바라보았을 때,
열일곱 살의 <고흥 촌닭>은 헛웃음을 지었다.
<고흥 촌닭>이라고 경멸하던 그들이 오히려 <순천 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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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전라도 아이>가 더 어린 나이였을 때,
악마와 거래를 하고서라도 숨기고 싶었던 과거.
<고흥 촌닭>
그 <고흥 촌닭>이 순천이라는 도시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단팥죽>이
열일곱 살의 부산에서는 바나나, 아이스크림, 쏘세지같은 걸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된다.
<고흥 촌닭> <전라도 아이>
내 소녀 시절의 꼬리에 저주처럼 붙어있던 두 개의 지명.
고흥, 전라도.
지금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이 글을 계속할 수가 없는데도
통증을 억누르고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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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을 앞둔 나.
지천명의 나이- 지천명이 된다 해도 하늘의 뜻을 어찌 알랴?
나는 지천명이라는 말을 내 입에 올리는 일만으로도 미리 부끄럽다.
<고흥>과 <전라도>
두 지명은 내 삶에서 가장 참혹하게 끔직했지만......
갈증날 만큼 그리웠던....... 그 지명들과 ...... 이제는........화해하고 싶었다.
기실 이 글은 지난 동짓날 저녁에 쓰다가 팽개쳐 두었는데 오늘 다시 계속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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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출간을 앞두고 나는 두렵다.
교단일기 출간은
내 삶의 어느 회랑에서 그토록 강한 기억을 남겼던 <단팥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흥 촌닭>의 고향 시절.
할머니께서 끓여주셨던 동지팥죽이 유명 신문이나 잡지에 그 이름이 한번도 활자화된 적이 없는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내 모습이라고 한다면.......
내 교단일기-? 그건 교단 일기가 아니라 어느 교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적어본 신변잡기이리라-
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내 삶에 있어서 또 한 번의 단팥죽이 되지나 않을까?....... 생각하면 두렵다.
조선 블로그.
어제....... 어느 지역 신문 기자님께서 내 안부 게시판에 비밀글을 주셨다.
내 글을 신문에 연재하고 싶다고........
아직 답하지 않았다.
두렵다.
난 그냥 두렵다.
내게 있어선 조선 블로그에서 행운처럼 만나는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입시제도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명문 여중에 입학시험을 치던 날 맛보았던 <단팥죽>은 아닐까?
이름 없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의 글이
자비가 아닌........
출판사에서 교섭해 와서 유명작가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죽을 때까지 아니 잊을 겁니다. P선생님과 D사장님)
계속 이어지는 유료청탁이라던가,
급기야 어느 지역 신문의 연재 의사.
단팥죽 맛을 보면....... 실망하여.......
이 블로그까지 폐쇄하게 되지 않을까......
내 삶의 유일한 돌파구였는데......
나는...... 한 때 <고흥 촌닭>이었고,
또 한 때는 <전라도 아이>였던 끔찍한 꼬리표를 다시 경험하게 될까 또 두렵다.
이름 없는 초등학교 교사가
그 본분을 잃고 책을 내는 일이 <단팥죽>의 경험을 다시 맛보게 하지나 않을까 미리 두렵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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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신의 삶에서 세월과 뒤섞여서 무심히 지나갔던 기억도 이리 고통스러운데........
내 잘못이 아닌 어떤 기억도 이리 고통스럽기만 한데.........
그 엄청난 거짓말을 한 황우석 박사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쌍한 분.
그동안 MBC 피디 수첩과 황박사님 사이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랬지만.......
그 진실이 밝혀지면 진실의 편에 서서 거짓을 향해 마구 돌을 던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짓이 밝혀진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던 돌을 그만 놓아 버린다.
돌을 던질 가치마저 없기에.......
그리고 돌을 던지기엔 너무나 불쌍해서......
난 황교수님이 가엾고 불쌍하지만 그 분의 거짓말을 용납할 수 없다.
방학이라서 시간이 많다고.......
말도 글도 되지 않은 횡성수설........
끝도 없이 적었습니다.
어쩌면 심중에 있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기에...... 죄악은 아닐 겁니다.
조선 블로그에서 <진실>을 감히 입에 담으면서
황우석 박사님을 옹호하던 사람들의 글을 지금 다시 읽으니 가관이더군요.
그래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다만 시간을 필요로 할 뿐이지요.
MBC 피디 수첩.
참이나 대단합니다.
그대들이 있기에......숨겨졌던 진실이 조금은 그 모습을 드러내며.......
그대들이 있기에....... 넓었던 거짓의 자리가 조금씩 좁혀질 것입니다.
MBC 피디 수첩.
진실을 밝혔던 그대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대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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