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사태’ 100일…“1등자리 다 뺏길라”
전(前)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사태'가 6일로 100일을 맞는 가운데 사태가 특검수사 등으로 장기화되면서삼성 내부에는 경영 차질, 실적 악화, 투자 실기 등에 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5일 삼성그룹과 업계 등에 따르면 김 변호사의 의혹 폭로가 '삼성 특검'으로 이어지면서 그룹 '관제탑'인 전략기획실, 계열사 사장단, 주요 임원 등이 연일 압수수색, 참고인 소환 조사 등을 받으면서 일상적인 업무 외에 경영상의 위험이 따르는
주요 의사결정들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달이 훨씬 넘었으나 삼성이 이번 사태의 여파로 새해 경영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사장단, 임직원의 정기인사가 연기돼 '공격 경영'이 실종되는 등 조직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10월 29일 전 법무팀장 김용철변호사가 비자금조성, 정.관계 로비, 불법 경영권 승계 등의 의혹을 제기한 지 3개월을 넘겼으며 지난달 10일 출범한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수사는 10일로 한달을 맞는다.
삼성 임직원들은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이를 밀고 나가는 공격 경영 분위기가 사라졌으며 인사와 조직개편이 지연되는 바람에 제대로 일을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4.4분기와 올해 상반기 정도의 실적은 이번 사태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여름, 가을 정도에 잡혔던 계획을 집행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나쁘지
않을 수 있으나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실적 악화가 가시화되고 내년부터는 이것이 훨씬 악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공격경영' 실종…"글로벌 1등자리 다 빼앗길라" = 삼성 내부에서 감지되는 위기감은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르다.
특검이 출범하기 전에도 김 변호사의 의혹 제기가 이건희 회장 취임 후 최대의 위기를 삼성에 안겨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으나 막상 특검이 시작돼 이 회장 집무실, 자택, 그룹 전략기획실, 계열사 등이 잇따라 압수수색당하고 계열사 사장단, 임원 등이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자 삼성 내부에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삼성의 임직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재의 의사결정 지연, 경영 차질이 내년, 혹은 2-4년 후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삼성의 한 직원은 "전자산업의 경우 업종 특성 상 1-2개 분기만 투자를 실기하거나 흐름을 놓치더라도 시장에서 밀려나기 쉽다"며 "이러다간 1등 제품을 다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삼성이 갖고 있는 세계 1등 제품은 D램, S램, 플래시 메모리, 모니터, TFT-LCD,CDMA 휴대전화, 컬러 브라운관, 난연 ABS 등 20여가지에 이른다.
삼성 전략기획실 임원은 "특검으로 인한 경영 차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현재 불고 있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 재편 조짐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그 예로 들었다.
휴대전화 제조의 '원조'인 모토로라가 적자로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와중에서 예전 같으면 세계 휴대전화 업계의 판도 변화, 인수합병(M&A) 움직임 등을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을텐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임원들이 예상보다 큰 범위로 줄줄이 소환조사당하거나 출국금지 조치된 데 대해서도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전략기획실 고위 관계자는 "국제 비즈니스의 상당부분은 '얼굴장사'이자 신뢰를바탕으로 한다"며 "CEO들이 출금당해 현지에 출장가지 못하거나 소환돼 범죄인 취급당하는 것은 큰 계약을 성사시키고 수주하는 데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안타까워 했다.
삼성 전자의 '스타' CEO인 모 사장은 출국 금지되는 바람에 미국에서 컴퓨터, 휴대전화, 프린터 분야 등의 글로벌 기업 CEO들과 만나 반도체 납품과 관련해 수억달러의 연간 계약을 체결하는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업계획수립.인사 지연으로 '비효율 극심' = 삼성생명 소속 한 직원은 "연초에 단행돼야 했을 정기인사, 조직개편이 지연됨에 따라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임직원이 많다"며 "이런 상황이 올해 2-3개월은 더 지속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계획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조직과 인사가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확정이 되지 않다 보니 일상 업무만 하고 새로운 업무를 추진하지 못하고있다"며 정기 사장단 및 임원 인사 뿐 아니라 부.차장, 과장 등 일반 직원 인사도
순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은 통상 매년 1월초 정기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3월에 부장 이하 직원 인사를 실시하는 데 인사가 지연됨에 따라 업무 담당자가 확정되지 않음으로써업무 비효율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가 지연되다보니 신년 사업계획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가 잠정 사업계획을 세우고 새로 선임된 사장과 그룹 전략기획실이 새해 사업계획을 확정해야 하나 주요 CEO들과 전략기획실이 특검수사를 받는 데 전력을 집중하다 보니 이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전략 경영의 공백, 투자 지연 및 실기 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인재 영입 기업 문화에 '충격' = 삼성의 '심장부'인 전략기획실의 핵심보직 중 하나인 법무팀장을 지낸 김 변호사의 부정.비리 고발이 삼성의 외부 인재 영입 기업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적극적인 인재경영으로 우수한 인재를영입, 기술력을 높이는 한편 공채 출신들에게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조, 일정한 성과를 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영입된 고위 핵심 임원이 이번 사태를 주도함으로써 삼성으로서는 앞으로 외부 인재 영입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 소속 한 직원은 "김변호사의 폭로 이후 언론, 검찰 등에 대한 내부 전현직 임직원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부 인간 관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유사 폭로나 제보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실정이며 기업 충성도 약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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