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858기 폭파사건의 당사자인 김현희씨가 남쪽 정부를 비난한 편지가 최근 공개돼 논란이다. 그녀는 왜 정부를 원망하고 있을까.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김현희의 자서전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와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를 실제로 집필한 노수민(58) 작가를 지난 연말 서울 잠실의 자택에서 만나 그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본보의 추적과 끈질긴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한 노 작가는 "김현희의 편지를 읽고 어떻게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녀의 본 모습과 사건의 실체를 국민에게 바르게 알려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겨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노 작가는 2006년 일본 주간지 '슈칸신조'에 김현희에 대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김현희의 편지를 읽은 소감은.

"그녀가 불쌍하다. 북한은 그녀를 '증거 인멸' 차원에서 없애려고 했고, 우리 정부는 실컷 이용한 뒤 방치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녀가 살아있어 당한 고통도 컸다. 정부의 조사를 받을 때에는 안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지냈고, 결혼한 뒤에도 숨어 살고 있다. 남북 양쪽 정치권력의 희생양이다. 애처롭다."

-김현희의 자서전을 대필했는데, 어떤 경위로 쓰게 되었나.

"1990년이었다. 누군가 자서전을 대신 써 줄 사람을 찾는다는 의뢰를 받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두 명의 남자를 만났다. 누구의 자서전인지 말하지 않았다. 몇 차례 면접을 보았는데 그중에는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정형근씨도 있었다. 마지막에 서동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만나 김현희 자서전 집필을 부탁받았다. 원고지 1000매 분량의 책 2권('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을 쓰기로 했다."

-김현희는 정말 북한 공작원이냐는 의혹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틀림없이 북한 사람이다. 아마 안기부 직원이나 변호사 외에 민간인으로 그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일 것이다. 책을 쓰면서 2년이 넘도록 수시로 함께 밥을 먹은 것은 물론이고 목욕도 하고 잠도 같이 잤다. 그녀의 강연회를 따라 전국 각지를 함께 다녔다. 그녀와 함께 공무원 연수시설에 묵었을 때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큰 목욕탕이 있었냐'며 깜짝 놀랐다. '탕에 들어가도 되느냐'며 어쩔 줄 몰라했다. 대중탕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내가 그녀에게 자료를 넣을 종이가방을 하나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한참 망설였다. 모아 놓은 종이가방이 예뻐서 그걸 내주기가 아까워 한참을 골랐다는 것이다. 남쪽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김현희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포장마차에서 국수 한 그릇 먹는 걸 즐겼다. 한번은 함께 국수를 먹는데 소주를 파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니 '포장마차에서 술도 파느냐'고 했다. 그런 면을 보면 김현희는 남쪽 사람일 수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을 때 KAL기 사건에 대해 한마디 물었어야 했다. KAL기 사건은 북한이 저지르지 않았냐고 묻고, 김정일이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모든 의혹이 풀렸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KAL재조사에 떳떳이 응하지 않아 의혹이 더 커졌다.

"김현희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다. 이름도 바꿨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테러범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겠는가. 또 그녀는 테러범이다. 정부에서 한 푼의 정착금도 받지 않았다. 그녀의 신변보호도 나중엔 안기부에서 경찰로 넘어갔다. 방치된 셈이다. 그런 원망 때문인지 국가정보원(옛 안기부)과도 일절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고 들었다."

-KAL유족들은 지금도 그녀를 원망한다.

"사실 처음 봤을 때 김현희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실감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한 일은 비행기에 짐을 놔두고 내린 것뿐이고, 유해도 잔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에는 그러지 못했다. 북에 두고 온 가족 얘기를 할 때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희생자 유족과 부딪쳤을 때에는 괴로워했다. 김현희가 전국을 강연 다닐 때 유족들이 현장에 찾아와 울부짖고 때론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 괴로워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아 갔다. 그녀는 '북한에 속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나.

"97년 말 결혼할 당시 재산이 꽤 있었다. 내가 쓴 책이 140만부가 넘게 팔렸고 강연료 수입도 꽤 많았다. 10억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 하지만 결혼 뒤 남편의 사업 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노 작가가 2006년 일본 주간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김현희의 외조부는 개성 갑부였던 임준호였다. 안기부 수사 결과, 남쪽의 개성출신 기업인 중에도 외조부 임준호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김현희는 남쪽에서 외가 쪽 친척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노 작가는 사형 선고를 받은 김현희가 특별사면 받은 데에는 이런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노 작가는 개인적인 얘기도 털어놓았다.

"내가 김현희 자서전 쓴다고 하니 신문사에 있던 친구가 '그녀를 조사했던 안기부 조사관들이 모두 상을 당했다'면서 말렸다. 근데 나도 결국 남편을 잃었다.

91년 3월 17일 저녁에 남편과 함께 김현희와 저녁 식사를 했다. 밤 12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다음날 KBS라디오 작가였던 남편이 약속이 있다며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원고 50매를 정리해야 해서 그냥 택시 타고 가라고 했다. 남편은 택시 잡으러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너무나 괴로웠다. 사실 세 번째 책(92년 출간된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아니면 쓸 사람이 없다고 해서 쓰게 됐다."

노 작가는 지금은 김현희와 연락이 안 된다면서 이런 당부를 전해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그녀가 지금 괴로워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차라리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사실을 다 밝히고 의혹에 답해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나서기 어렵다면 남편이라도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노 작가는 김현희 외에도 기업인과 정치인의 자서전을 여럿 썼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읽고 감명받았다는 강철환의 탈북 수기 '대왕의 제전'도 노 작가가 집필했다. 그녀는 소설가다. 최근에는 '울엄마교'라는 25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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