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엔터테인먼트 대통령
마이클 울프의 ‘오락의 경제학’이란 책이 있다. 그에 의하면 요즈음의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때 그 필요성보다는 그것이 주는 감동, 즐거움을 산다는 것이다. 이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E-factor)는 모든 산업에 스며들어 있다. ‘쥐라기 공원’이 인기를 끌자 패스트푸드 기업에서는 햄버거에 공룡 인형을 끼워 팔아 매상고를 올렸다. 요즈음에는 쇼핑몰에 극장, 식당, 놀이공원 등을 연계시켜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융합하고 있다.
산업의 최근 트렌드에 대해 놀랄 만큼 탁월한 성찰을 보이고 있는 그의 주장은 기실 산업계뿐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감성의 세대들이 깊이 있고 어려운 강의보다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강의에 몰리고 정치인이나 군인보다 가수나 영화배우, 축구 선수 같은 스타들을 선호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제 재미의 요소는 그렇지 않은 모든 진지한 요소들과 결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요즈음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부담없는 외모에 구수한 입담이 매력이면서 가끔가다 나오는 파격적 언사들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다. 장인의 전력이 논란이 되자 “그렇다면 사랑하는 부인을 버리란 말입니까?”로 응수했을 때, 공식적이고 정치적인 모든 언사들을 일소한, 그 감정에 호소하는 말은 그대로 노 대통령의 장점이 되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요인이 되었다. 경상도 억양의 리듬을 타고 흐르는 ‘맞습니다, 맞고요’는 우리 시대의 유행어로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국민에게 제공된 엔터테인먼트의 압권은 ‘검사들과의 대화’였다. ‘막 가자는 거죠?’라는 간결한 언사에 드러나는 자제력과 ‘상층부를 못 믿겠다’는 직설법의 파워가 어우러져 방송의 긴장감은 액션 프로의 그것을 능가했다. (세상에!) 팔걸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둘 곳 없는 팔을 가슴에 모으고 앞에 책상이 없어 다리를 모았다가 꼬았다가 하고 있는 (숙녀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는 안 된다는 에티켓 때문에 방송 내내 얼마나 불편했을까?) 강금실 법무장관 옆에서 든든한 노 대통령은 ‘백마 타고 온 기사’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면 노 대통령은 선거유세 때부터 ‘스타’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었다. ‘기타 치는 대통령’에서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란 영화를 연상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국을 책임지는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가 피아노 치는 안성기의 부드러움과 연결되면서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마찬가지로 남방 차림에 기타를 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민주 투사의 공격적인 요소를 불식시키면서 서민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노 대통령의 이미지가 만능 스타 박경림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박경림은 작은 키에 네모난 턱, 쉰 목소리의 소유자로 여성이 스타가 되기에 불리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성실하며 당당한 태도 때문에 그 약점들이 곧 강점으로 변하였다. 여기에 팔방 미인의 스타를 열망하면서도 열등감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그녀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 방식은 돈 없고 학벌 없는 환경에서 자신 있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바보 노무현’의 그것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다.
단언하건대 노 대통령을 흉내내고 있는 개그맨인 ‘노 통장’은 인기몰이에 많이 고전할 것이다. 종래 개그맨들은 권위 있는 정치인을 풍자해서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으나 노 대통령은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대통령이 되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오락도’ 주는 대통령이 되어야지 ‘오락만’ 주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란 말이 있다. 교육과 오락의 요소가 융합하여 공부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오락이 공부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노 대통령의 파격적 언사나 신선한 발상은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경제 불황, 북핵 문제, 계층간의 위화감을 풀어나가는 윤활유 역할을 할 때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최혜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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