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9)
평양이 핵 보유를 선언하다!
민족의 명절인 설 연휴가 끝나기도 전에 평양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였다. 2월 10일, 그들이 핵 보유를 선언한 이 날은 분명 우리 민족이 분단과 통일의 역정(歷程)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로에 서 있던 날로 기록될 것이다.
북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가? 그동안도 북은 여러 경로로 핵무기 보유를 주장해 왔다. 미국은 여러 차례 북의 핵 보유 가능성을 확인해 왔고, 중국은 매우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 정권까지 앞장서서 북의 핵 보유 가능성을 줄기차게 부인해 온 것이다. 왜 그럴까?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북이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핵의 보유를 선언해 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북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 되어버린 것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 정권의 각료들이 북의 핵 보유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2.10의 선언은 선언이 아니라 주장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북의 이러한 주장은 6자회담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전술이라고 한다.
보자!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전술이라고? 가정(假定)해서 북이 높아진 협상력을 가지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안보와 경제에서 만족할만한 대가를 얻어냈다고 하자. 그러면 북은 국제사회에 무엇을 주어야 하나? 그들이 갖고 있다고 선언한 핵무기를 내 놓아야 한다. 그 때 북이 핵 보유 선언은 전략전술로 한 것이고 실제로는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을 뺄 수 있겠는가? 북의 핵 보유선언을 단순한 협상전략으로 보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나는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이 정권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북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정보부족으로 단정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제 북이 핵 보유를 선언한 이상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게 되었다. 노 정권이 아직도 북의 핵 보유를 얼버무리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리석어서 일까, 다른 저의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 북은 이미 핵무기를 생산하여 보유하고 있다. 그 핵무기의 성능이나 운반수단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 내부뿐만 아니라,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 준다. 그동안 정세의 흐름으로 볼 때 예측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충격이 몰고 올 재앙이 작아질 까닭도 없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켰다. 수 십 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재산상의 손실은 헤아릴 수 없다. 만일 책임 있는 당국이 정확하게 해일경보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대부분의 인명손실은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북의 핵 보유 선언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나라의 안팎에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 그 충격이 어떤 재앙을 몰고 올 것인가. 책임 있는 당국이 국민에게 진실을 말하고 그 재앙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정권은 애써 태연하려 하고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우리 국민이 이 정권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북의 핵 보유는 그 파장이 두 방향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하나는 북이 앞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핵 위협을 가중시켜 나갈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의 핵을 제거하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폭발점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그것이 옳건 그르건, 북의 핵 보유라는 정치지진은 이미 그 파장을 만들고 있다. 어떻게 대처하여 그 재앙을 최소화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전선(前線)을 보자.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노 정권에 대하여는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야당의 형편은 어떠한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도,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도,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구하겠다는 열정도 보이지 않는다. 나 자신도 과거 한 때는 여당에, 또 지금은 야당에 속한 한 사람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무한 책임을 느낀다. 다만 추호도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 국민과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 헌신하고자 한다.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도 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려는 노 정권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 학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엘리트들도 평론가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상을 준다. 이것이 어디 논평으로 접근할 문제인가.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문제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광야에 외치는 심정으로 말한다. 오늘 메아리가 없어도 역사는 소리 없이 응답해 줄 것으로 믿는다.
첫째, 북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동원한 거액의 돈은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출발하여 이 정권이 계승하고 있는 대북정책으로 얼마의 현금이 북으로 흘러 들어갔는가? 이미 밝혀진 5억 달러 외에 얼마의 돈이 비공식적으로 건네졌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남에서 흘러든 돈으로 북이 핵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이제 그 의심이 현실로 나타났다. 북이 핵을 만드는 물질적 기초를 남에서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거기에 책임 있는 사람이나 세력은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사태해결의 첫 걸음이다.
둘째, 북은 앞으로도 핵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돈을 필요로 한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수량을 늘리며, 또 운반수단을 개발하기 위하여 큰 돈이 필요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 뒷돈을 대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금의 정책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키고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한다는 기조는 유지되어야 한다. 전면 중단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현금이 직접 북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현금으로 지급되던 것은 모두 물자나 인프라 건설로 대체해야 한다. 이것은 북이 자초한 일이다. 우리가 지원한 돈으로 핵을 개발하다니! 앞으로도 현금이 들어가면 핵 역량 강화에 그 돈이 쓰여 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러한 정책변화를 북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일 뿐이다.
셋째, 비록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용인할 수 없다. 그 핵무기는 철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이 시점에서 핵 불용(不容)을 강력히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북의 핵 보유를 반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연대를 강화하여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시켜야 한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에게도 사활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국회에서 답변하는 정부 책임자들이 지금도 평화와 전쟁반대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른다. 북을 자극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평화가 깨지기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변명이다. 도대체 이런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북이 핵으로 무장하는 것이 평화란 말인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평화와 전쟁반대를 앵무새처럼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에서 누가 평화를 반대하고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는 말인가? 있다면 핵을 추구하는 북에 있지 우리 사회에는 없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을 향해 입만 열면 평화와 전쟁반대를 내세우는지 말해 보라. 오늘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의 위기는 오직 북의 핵 야망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평화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피한다고 모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이를 파괴하려는 위협에 강력히 맞서는 용기를 발휘할 때 비로소 향유할 수 있으며, 전쟁은 그 싹을 잘라버릴 때에만 막아낼 수 있는 법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우리 모두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국가이익을 위해 이보다 더 긴요한 과제는 없다.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협력도 아주 중요하다. 북을 6자회담의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동맹과 협력은 필수불가결의 선결조건이다. 지금까지 김대중 정권과 노 정권은 말로는 동맹과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북을 감싸고 두둔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이것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근본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이익을 지켜내고, 민족의 전도(前途)를 열어갈 힘은 우리 국민, 우리 민족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북의 핵 야망이 결국 그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한다는 점을 설득하여 북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는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국제사회는 우리의 뜻과 의지에 신뢰를 보내고 동맹과 협력의 틀에 탄력이 붙게 될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오늘의 이 암담한 국면을 희망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용기 있는 불퇴전의 자세로 위협에 맞서며 확고한 의지로 북을 설득해야만 한다. 충무공께서 말씀하셨던가. 필사즉생(必死卽生)이요, 필생즉사(必生卽死)라! 대한민국이 이 국면에서 더 멈칫거리고 물러설 곳은 없다고 믿는다.
2005. 2. 15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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