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혁명가들의 우상 체 게바라를 다시 본다
혁명가들의 우상 체 게바라를 다시 본다
영원한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 - 체 게바라
<강철군화, 출처 : 프리존>
며칠 전 우연히 한 케이블TV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프로를 보았다. 진행자는 체 게바라가 보여준 민중에 대한 가없는 사랑과, 제국주의에 맞선 불굴의 투쟁,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게릴라 지도자로 돌아가 제3세계 민중들을 위해 투쟁하다가 목숨을 버린 순수함을 열심히 찬양했다. 1960년 12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두툼한 군용외투를 걸치고 군화를 신은 체 게바라가 댕기머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북한 쳐녀와 눈밭 위에서 춤을 추는 사진을 통해 ‘체’와 ‘조선민중’의 연대(連帶)를 보여주기도 했다. 체 게바라를 “우리 시대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찬사도 빠지지 않았다.
그 프로를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삶과 생각을 공정하게 그린 기록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상숭배’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체’는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는 좌익 지식인이나 젊은이들의 우상이었고, 사후(死後) 영원한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이었지만….
치열하게,‘쿨’하게 살았던 체 게바라
솔직히 말하면, 나도 체 게바라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요즘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을 열심히 밑줄 쳐 가며 읽었고, 인터넷에서 체 게바라 관련 사이트들을 두루 웹서핑하며 그의 사진들을 모으기도 했다. 한 동안은 체 게바라의 브로마이드 사진을 내 방에 걸어놓기도 했었다.
내가 체 게바라에게 매료됐었던 이유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 게바라는 얼마든지 현실 속에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두 차례 남미대륙을 여행하면서 압제와 착취에 신음하는 기층민중들의 현실을 목격한 후 한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이 세상의 모순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 치열한 삶의 자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바혁명에 성공한 후, 쿠바군(軍)대장, 산업부 장관,중앙은행 총재 등 요직을 맡았던 체 게바라가 돌연 모든 공직을 던져 버리고, 제3세계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게릴라로 돌아갔다가, 결국은 볼리비아의 산속에서 생을 마감했던 것도 멋있었다.
체 게바라의 그런 ‘쿨’한 모습은, 김대중 정권 시절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대중에게 넙죽 큰 절을 했던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정치인의 모습이나, 5-18 전야에 단란주점인지 룸살롱인지에서 여자들을 끌어안고 흐느적거렸던 노동자 시인과 대학운동권 출신 386정치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체 게바라는 자녀들에게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좌절’보다는‘안주하는 삶’을,‘실패’보다는‘성공 후의 자족감(自足感)’을 더 두려워했던 사람이었다 (임지현 ; 「세기말에 띄우는 편지 - 혁명가 체 게바라에게」). 권력이라는 마약에 탐닉하기는커녕 권력의 냄새조차 싫어 스스로를 새로운 자기희생의 길에 던졌던 사람이었다.
자신과 똑 같은 헌신성을 타인에게도 요구
그러나 만일 체 게바라가 오늘날 우리나라에 나타난다면, 나는 단호하게 그와 맞설 것이다.
첫째는 그가 ‘인간해방’의 이념으로 선택했던 사상, 즉 공산주의에 결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해방’의 사상이 아니라, ‘억압’의 사상이며, 인간에게 빵도, 자유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실패한 사상라는 것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둘째로는(이것이 내게는 더 중요한 이유인데) 나는 체 게바라가 자신의 치열한 혁명가적 열정을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했던 것에 대해서 결단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쿠바중앙은행 총재로 재직할 때, 32층짜리 쿠바중앙은행건물을 신축하면서 “32층짜리 건물에 무슨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느냐?”라고 우겼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만성천식환자인 자신도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넘나들며 게릴라 전쟁을 벌였는데, 건강한 사람들이 32층 정도를 걸어서 오르내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숨이 탁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32층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라고? 그럴만한 체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노친네들이나 장애인들은?
자기가 할 수 있으니, 남들도 따라오라? 세상에 이런 독선과 오만이 어디 있나? 이런 게 휴머니즘인가? 이런 게 인간해방이고 민중해방인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남 보고 따라 오라는 자가 휴머니스트라고? 이런 소리를 하는 인간을 두고, ‘ 우리 시대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혁명의 이름으로 자신과 똑 같은 헌신성을 타인에게도 요구하는 것, 그것은 수많은 혁명가들이 저질렀던 잘못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미덕들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압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곤 했다. 많은 혁명가들이 쉽게 독재자로 변질되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잘못을 체 게바라도 저지른 것이다. 체 게바라는 물론 그것을 ‘압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라고 주장했지만….
체 게바라와 만났던 샤를르 베틀랭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얘기하는 새로운 인간이란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체는 자기의 바람대로 다른 이들이 행동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 자신은 그런 행동이 그들의 행복을 증진시켜 준다고 믿고 있었으니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그리고 시간을 남겨 놓았어야 했어요. 우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새로운 인간이란 너무도 완벽한 로봇이나 다름없는 존재지요. 따라서 그건 일종의 유토피아적 사고였다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전체주의자들과의 싸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혁명적 인간상’을 강요하는 자들,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자들, 자신의 세계관을 강요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진보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들을 ‘전체주의자’라고 부른다.
나는 그 색깔이 ‘평등’이건,‘민족’이건,‘통일’이건 간에, 이 세상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 가지 색깔로 칠해버리려는 인간들이 싫다. 그들이 주인 되는 세상,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로봇`이 될 것을 요구하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북한이 바로 그런 사회 아니던가?).
체 게바라는 고행자와 같은‘극기(克己)’의 삶을 통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을 스스로 체현(體現)하기라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이 지탄해 마지않는 ‘기득권층’못지않은 구린내를 풍기는 위선덩어리들 아니던가?
우리의 싸움은 특정 개인, 혹은 특정 정파와의 싸움이 아니다. 이 세상을 단색으로 칠해 버리려는 자들, `로봇`이 될 것을 요구하는 자들, 즉 공산전체주의자들과의 싸움인 것이다.
173957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