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 더이상 북한에 끌려 다니면 안된다"
[머니투데이 박준식기자] 북한이 현대그룹에 대해 "모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공식 입장
을 밝힌 가운데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북한에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며 끌려다녔다는 자성론이 대
두되고 있다.
21일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 등은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니는 대북사업을 방치해서는 안된
다"고 입을 모았다.
법조계는 북한측의 주장에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의 원상복귀와 "7대 독점사업권 해지"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는 것.
계약일반론으로 따져봤을 때 현대와 북측이 맺은 사업계약은 위임이나 고용계약이 아니기 때문
에 일개 "고용인"이 뒤바뀌었다고 "해지"될 수 있는 중대한 사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법리적 해석은 비록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치 않은 것이긴 하지만 북한측의 "막무가
내식 협박과 통첩"이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제시됐음을 적시하고 있다. 차제에 북한과의 관계를
원칙과 효과에 주력하며 북측 태도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성론이다.
◇"먼저 당사자인 현대에 맡겨라"=북측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가 20일 밝힌 주
장은 북한이 전체주의적인 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일개 기업이나 단체 수준에 불과한 협상카드라
는 지적이다. 국가간 문제가 아닌 만큼 이를 수용할지의 여부는 1차적으로 현대그룹이 주도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대북사업이 민족사업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많은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지만 경제적 문제에 있어 사업은 계약 당사자가 실익을 따져 논할 일이지 제3자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북한이 난데없이 내세운 "김윤규 논리"에 일부 언론과 정부는 북한 측에 유리한 구도를
조성해 왔다. 현정은 회장이 그룹 실권자로서 단행한 인사는 사업파트너인 현대가 가진 권리인
데도 일부 언론과 정부는 또다른 사업당사자인 북한측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법조계 인사는 "이 사건을 통해 정부나 일부언론이 취한 태도는 마치 "우는 아이 달래기 위해
정작 버릇은 못고치고 사탕만으로 무마하자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북한 측에 정통한 한 학자는 "북한의 전술은 정치문제나 경제문제 가릴 것 없이 일방적이고 전
략적이기는 마찬가지"라며 "이쪽(남한)에서 저쪽(북한) 한마디를 가지고 떠들어댈 수록 그들의
무소불위적 발언이 영향력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사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라며 "북한 측의 전술에 얼마나 더 끌려다녀야 하겠느냐"고 답답해 했다.
◇"아쉬운 것은 오히려 북한일 수도"=만약 현대가 북측의 일방적 계약파기를 이유로 사
업의지를 접는다면 아쉬워지는 것은 북한일 것이란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날 담화문에서 북
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표현 뒤에는 북측의 염려가 엿보인다
는 해석이다.
북한측에 관광사업을 위해 현대그룹이 많은 기간시설 투자를 단행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북측
도 이를 운용할 인원과 시설을 배치했다. 사업이 중단돼 이 인프라를 활용하지 못하게 되고 최대
달러 수입원을 잃을 경우 북측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요지다.
북한관광 사업의 경우 일면 북한이 독점권을 가지고 현대에 이를 불하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
를 반대로 뒤집어보면 사업의 수요를 조절하는 것은 남한 국민이다. 북한 관광을 실비보다 많은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이용할 수요는 남한국민 외엔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북측은 현대 이후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커다란 대북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고, 따가운 국민의 여론을 감내하며 선뜻 나설 기업은 없다.
이와 관련 남북경협 관련 시민단체인 남북포럼은 21일 "끌려다니는 대북사업을 이제는 끌어당
기는 대북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포럼은 성명을 통해 "그동안 대북사업에 참여한 1천여개의 회사가 부도가 났거나 중도포
기로 멍들어 회사 간판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 당국은 금강산관광이 정상화 안 될
경우 남북경협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윤규 문제가 장기화될 수록 북한도 결국은 수난자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남북포럼은 북한이 경제논리를 내세워 국내외 기업에 대북사업을 제안하는 것은 자유지만 국내
기업과 합의한 사업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상생의 경협이 될 수 있
도록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준식기자 win0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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