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와 캐시로 기자들 녹였다”
검찰 “수백만원 촌지제공”에 언론시민단체 “진상밝혀라”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민의 정부 시절 언론사 간부들과 식사를 한 뒤 300만∼500만원씩 촌지를 돌렸으며, 1회 식사비용이 5000만원에 이른 적도 있다는 검찰 주장이 제기된 후 박 전 실장의 대언론 로비 실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비자금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는 지난달 26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상균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혐의’에 대한 병합심리 첫 공판에서 전 무기거래상 김영완 씨가 미국에서 보내온 진술서 내용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박 전 장관의 현대비자금 수수 혐의를 집중 추궁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시민단체 강력반발 검찰의 주장이 제기되자 언론단체와 시민단체는 박 전 실장의 기자관리 실태와 권언유착 실체가 이번 기회에 밝혀져야 한다며 해당 언론인의 ‘고해성사’와 ‘사죄’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언론노조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달 30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박 전 실장의 대언론 로비행각을 “낮에는 건전한 정언관계를 부르짖다가 밤이 되면 언론과 뒷거래를 서슴지 않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위”로 규정하면서 “언론사가 내부 진상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파헤치고 국민 앞에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두 단체와 ‘국민의 힘’은 1일 방송3사와 조선 중앙 동아 등 주요 신문사 앞에서 동시다발적인 1인시위를 하기로 했으며, 2일부터 10일간 주요 언론사와 검찰청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면서 진상 공개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들 단체는 또 8일 ‘박지원 씨 언론계 로비의혹과 관련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기자들이 밝힌 로비실태박 전 실장의 기자관리는 ‘위스키와 캐시(Whiskey&Cash)’라는 표현으로 상징될 만큼 ‘비공식적’ 이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인 98년 6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날씨도 좋은데 북한산에 가서 개고기에 술 한잔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공보수석이었던 박 전 실장은 주변에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개고기를 먹으러 갈 사람은 집합하라는 통지가 왔다.”
현 신문사 부장급 간부인 한 기자는 당시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경험했던 박 전 실장의 기자관리를 “아무리 피곤해도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있었으며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었다.
촌지를 받은 경우도 있으나 검찰 주장처럼 그리 큰 액수는 아니었다”며 “박 전 실장은 기자관리와는 별도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통로로, 때로는 언론사 사주나 간부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민원을 들어줬다.
단순히 촌지를 주는 수준의 일차원적 언론관리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기자가 밝힌 대표적인 사례는 98년 IMF 당시 신문사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기도 어렵고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기한을 연장하기도 어려웠을 때 박 전 실장에게 부탁하면 금융기관이나 금감원 등을 통해 청탁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민원을 들어주는 것과 동시에 박 전 실장은 언론사내에 자기 사람을 심는데 집요한 면모를 보여 적도 많이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박 전 실장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비서관이나 관료들 또한 박 전 실장이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의 대화창구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한 전직 관료는 “국민의 정부 당시 보수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청와대 내부에는 주전파와 주화파가 있었다.
박 전 실장은 양동작전을 썼다.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전쟁했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두르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당시 보수언론들과 가장 대화가 잘 됐던 사람이 박 전 실장이었다.
물론 박 전 실장의 언론관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이 촌지를 제공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진술이 엇갈리고 있으나 술자리에 대해선 대부분 일치한다.
촌지의 경우 일대일로 만나 주거나 몇몇 기자들만을 상대로 제공했기에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자리와 식사자리의 경우 박 전 실장이 공판에서 진술한 것처럼 10∼30명의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일주일에 4∼5회, 청와대나 정부중앙청사 주변의 한정식집에서 모였으며 경비는 한번에 300만∼500만원 정도 들었다.
청와대 출입기자실인 춘추관은 중앙기자실과 지방기자실, 사진기자실로 구분돼 있는데 박 전 실장은 각 실별로 한달에 3∼4회 이같은 술자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박 전 실장이 자주 찾던 한정식집은 ‘향원’이란 곳으로 일인당 식사비용이 3만∼5만원이었으며 술값은 별도였다.
‘향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 실세로 불렸던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이 집을 통째로 빌려 60여명의 기자에게 양주 100병을 산 것으로 유명한 집이다.
박 전 실장은 이외에도 청와대 출입기자 등 안면이 있는 기자들이 해외연수 등을 부탁할 경우 각종 언론관련 재단에 이들을 적극 추천했으며 실제로 일부 기자들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언론계에서 흔히 ‘박지원 장학생’이라고 일컫는 사례중 하나다.
이영태 기자
46032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