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서 이라크 종전뒤 최대규모 시위
25일(현지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 한복판인 워싱턴기념탑 앞 광장은 색색의 플래카드와 피켓, 구호로 뒤덮였다. 미 동부 일대에서 집결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난 5월1일 이라크 전투종결 선언 이후 최대규모의 반전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날 일본에서도 도쿄 등 전국 곳곳에서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모건타운에 사는 메리 레흐만(63·여)은 새벽(현지시각)에 친구들과 함께 밴을 타고 워싱턴으로 상경했다. 레흐만의 손엔 ‘모든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성취된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어록이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그는 “미국은 지금 전세계를 향한 선의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기념탑 광장 곳곳에선 조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풍자하는 가면극과 거의 욕설을 퍼붓는 랩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다.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히브루어, 아랍어, 한국어로 된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연사로 나선 알 샤피론 민주당 경선후보는 “우리가 옳았다. 부시는 미국민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 지금도 우리는 옳다”고 외쳤다.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페르난도 드 솔라 수아레즈는 “부시 대통령은 이 전쟁에 관해 전세계에 거짓말을 했다. 이제 더이상 군인들을 희생시켜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의 성격 변화를 뚜렷히 보여주는 듯했다. 단순한 반전시위를 넘어서, 내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 재선에 반대하는 운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행사장엔 ‘이라크 주둔 군인 즉각 철수’ ‘제국을 위한 전쟁은 그만’ 등의 내용을 담은 피켓보다, ‘부시 탄핵’ ‘부시는 거짓말쟁이’ 등 부시 대통령 개인을 겨냥한 플래카드·피켓들이 눈에 더 많이 띄었다.
‘2004년엔 부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뽑자’는 피켓을 든 크리스 허던(62·사우스캐롤라이나주 거주)은 “부시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870억달러를 더 전비로 쓰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맹비난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정부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사실을 몰랐지만, 미군과 마찬가지로 외국군도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리노이대 신입생인 마크 크리스텐슨(18·컴퓨터공학)은 “한국이 추가파병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건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청년으로부터 건네받은 ‘전세계가 이라크전쟁에 반대한다’는 대형 한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행진을 벌이던 크렌힐(50·여·보스턴 거주)도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진보단체 연합체인 ‘인터내셔널앤서’와 ‘평화정의연합’이 공동주최한 이날 시위엔 워싱턴 일대는 물론이고 뉴욕과 일리노이, 멀리는 플로리다에서까지 시민들이 모였다. 〈아에프페통신〉은 이날 워싱턴 시위 참가자 수를 ‘2만명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일본 도쿄에서는 이날 500여명의 시민들이 신주쿠의 공원에 모여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반대집회를 열고 “자위대를 이라크에 보내지 말라”, “(이라크)점령 지원을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방위청 앞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날 집회와 행진은 일본 소비자연맹과 시민단체들의 공동 주관 아래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엔지오)들의 연합조직인 ‘월드피스나우(World Peace Now)’의 후원으로 열렸다.
한 시위 참가자는 “저들은 인도적 지원을 위해서라지만, 자위대는 본질적으로 군대다. 인도적 지원은 엔지오와 같은 비 군사조직이 담당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는 이라크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으나, 일단 자위대가 파견되면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할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도쿄 외의 일본 전국 곳곳에서도 이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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