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세풍' 수사 때 삼성 숨겨줬나
<'삼성맨'된 이종왕․서우정, '세풍' 수사 때 못밝힌 70억 비자금은 누구 돈?>
(오마이뉴스 김영균(gevara) 기자) = "오늘(22일) 보도된 (X파일)내용에 대해 회사(삼성그룹)쪽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겠다. MBC는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상호 MBC 기자의 'X파일' 때문에 삼성그룹 법무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장(사장급)은 22일 밤 9시 MBC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삼성-언론-검찰-정치권'으로 이어진 추악한 커넥션을 폭로하자 "단단히 (소송을)준비하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또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면밀히 분석해 조만간 차근차근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상 '대언론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삼성이 강력한 반격 의지를 내비침에 따라 'X파일 실명 보도'를 놓고 앞으로는 삼성과 언론사들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한층 업그레이드 된 삼성 '율사 친위대(법무실)'의 위력이 얼마나 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종왕 법무실장과 서우정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이종왕․서우정, 세풍 수사 지휘... '삼성 비자금'만 못 찾아
두 사람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막강한 삼성그룹 법무실 내에서 좌장 격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행적과는 이율배반적인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은 이번 X파일 폭로로 숨겨졌던 윤곽이 드러난 97년 불법 대선자금 모집, 이른바 '세풍'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찰 주요 책임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한 사람은 지난 99년 세풍 수사결과 중간 발표 때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다른 한 사람은 지난 2003년 세풍 수사결과 최종 발표 때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종왕 법무실장은 지난 99년 8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맡아 세풍 사건 중간 수사발표를 주도했다. 당시 검찰은 서상목 전 의원 등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유야무야 수사를 마무리해 비난을 받았다. 검찰은 166억3000만원에 이르는 불법 대선자금을 밝혀냈지만, 유독 삼성과 관련된 비자금은 하나도 캐내지 못했다.
2003년 '세풍'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검찰은 삼성만 피해갔다. 세풍 사건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지난 2002년 2월 19일. 미국 도피중이었던 이석희 전 국세청차장이 검거되면서부터다. 검찰은 다음해인 2003년 3월 이 전 차장이 국내로 송환되자 수사를 재개했고, 같은 해 4월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때 수사를 지휘한 인물이 바로 서우정(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 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이다.
당시 검찰은 이회창 전 총재 캠프가 국세청을 동원해 모금한 166억3000만원 외에도 서상목 전 의원이 따로 관리하던 30억원, 이회성씨가 관리하던 40억원 등 모두 70억원의 비자금을 추가로 밝혀냈다.
하지만 검찰은 끝내 이 비자금의 출처를 캐내지는 못했다. 당시 검찰은 이 70억원에 대해 "서씨와 이씨가 그 돈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관련 없다'고 부인하고 있어 출처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번의 수사결과 발표를 하면서도 삼성 비자금은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수사 지휘의 최상층부에 이종왕․서우정 두 사람이 있었다.
세풍 조사한 검사, 삼성그룹으로 영입돼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지난해 나란히 삼성그룹의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종왕 법무실장은 2004년 8월에, 서우정 부사장은 4개월 뒤인 12월에 각각 삼성으로 영입됐다. 더구나 X파일이 폭로되면서, 두 사람은 이제 자신이 수사했던 '세풍' 사건과 관련성이 드러난 삼성그룹을 도리어 보호해야 하는 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세풍 사건 수사를 지휘한 두 사람이 세풍의 한 주역으로 새롭게 드러난 삼성을 방어하고 나서는 것은 도덕적 비난과 함께 갖가지 억측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다.
수사 지휘를 맡은 검사들이 유독 삼성과 관련된 비자금만은 밝혀내지 못했던 점→검찰에서 나와 나란히 삼성에 영입된 점→삼성이 세풍에 깊숙히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점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포함된 삼성그룹 법무실은 사실을 폭로한 언론을 향해 "명예훼손"이라며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자신들이 검찰에서 밝혀내지 못한 사실을 알린 언론을 향해 도리어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삼성의 법조계 인맥 활용은 상당히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검찰에서 '세풍'을 수사한 검사를 영입해 '세풍'을 막아내는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MBC를 상대로 서울남부지법에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낼때도 삼성은 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앞세웠다. 이 때문에 삼성은 X파일 사건 초반부터 전관예우 노림수를 쓴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작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삼성의 '재력'이다. 삼성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이종왕 법무실장을 비롯한 법조계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법무실을 강화했다. 다가올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게 삼성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삼성이 막강한 재력으로 사법부까지 접수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한편 삼성 법무실은 내주 후반 MBC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연 삼성 법무실이 '검-경 유착'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언론 전면전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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