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협에서 “대한민국 교육을 우리들 꼴리는 대로 할 터이니 국가는 일체 우리들한테 손을 대지 말 것이며, 우리들은 여태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니 국가는 ‘니들 일이나 잘 해 임마!“라는 성명을 내놨습니다.
제가 화나면 살짝 미소를 짓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제 입술이 빙그레한 모양으로 구겨져 있습니다. 뚜껑 열리는군요.
원론적인 관점에서 한번 짚겠습니다. 서울대 교수협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사정권 이래로 이런 ‘자율 침해’ 없어”
‘자율’ 좋지요. 자(自) - 율(律). 스스로 기율한다. 스스로 법을 정한다. 법의 주인이 된다. 당당한 주체가 된다. 공동체의 주인이 된다. 계몽시대 이후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봉건적 신민의 족쇄를 깨부순 자유 시민의 손에 쟁취된 것이 바로 ‘자율’입니다.
타율이 아닌 자율. 즉 왕이나 귀족에 의한 지배가 아닌 나 자신에 의한 지배. 난 나의 지배만 용인하겠다. 그것이 바로 ‘자율’의 이념이죠.
그런데 그 자율이 저마다 자기 꼴리는 대로 지 좋은 대로만 이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양은이도 자율하고 김태촌도 자율하면서 제 옆에서 이 자들이 도끼, 사시미를 들고 있으면 제가 과연 ‘자율’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근대정신의 패러독스가 나옵니다. 자율은 자율인데 사실은 타율인 것. 자율과 타율의 공존. 자율적 시민이되 사실은 복종하는 시민이어야 하는 것. 자율의 본질은 기실 ‘복종’을 선택하는 자율인 것이죠. ‘복종’을 선택하지 않는 지 좃대로 주체에겐 국가권력의 ‘철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 무엇에 복종하는 것입니까?
왕이나 귀족은 당연히 아니고, 힘센 집단의 이해관계도 아닙니다. 시민이 자율적으로 복종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보편성’입니다. 다른 말로는 ‘공공성’이라고도 하지요. 여기서 그 유명한 칸트의 야시꾸리한 말이 나옵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좀 풀어서 말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따라 해도 되는 행동만 하라.”가 되겠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깽판치고 싶다고 깽판치는 것이 근대시민사회에서 말하는 ‘자율’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건 봉건귀족의 자유지요. 나 개인의 행위에 항상 보편, 즉 남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 시민사회 ‘자율’의 전제입니다.
그렇게 항상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공자가 말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내가 싫은 걸 남에게 시키지 마라’할 수 있는 군자가 그런 경우죠.
하지만 공자도 나이 70이 되서야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의 경지에 들었다고 전합니다. 즉 내가 꼴리는 대로 해도 그것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전혀 어그러짐이 없었다는 전설의 경지죠. 여기에 이르면 진정한 ‘자율’적 시민이 됩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안 될 일이죠. 그래서 차선책으로 자율에 타율 원리를 도입합니다. 보편적 입법의 원리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글자 그대로, 물리적으로 ‘입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 나옵니다. 시민적 자율은 바로 ‘법-보편성의 보루’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법은 누가 정하며 또 그 법의 집행은 누가 강제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대의민주주의가 나오고, 선거를 하고, 보편성-공공성의 물리적 보루, 최종지평으로서 ‘국가 권력’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리 서울대 교수선생님들께서 학생 선발을 지들 꼴리는 대로 ‘자율’로 하겠으니 국가 권력은 꺼져 주시라네요. 서울대 교수님들이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선 자신들이 과연 자기기율할 수 있는 존재인지, 그들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게 행동해왔는지, 그들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의 경지에 들었는지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최소한, 서울대 2008년 입시안이 이 공화국의 보편 입법의 원리로 타당한 것인지부터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교수님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주구장창 “자율 침해하지 마라, 우수 학생 우리 마음대로 뽑겠다, 교육에 국가가 나서지 마라” 이 얘기의 반복입니다.
아니, 이거 무슨 이 인간들이 김태촌도 아니고, 양은이도 아니고, 유치원생도 아니지 않습니까. 명색이 국립1등대 교수들인데 공화국의 ‘보편성’은 어디다 엿 바꿔 먹었답니까? 국가와 정치권력은 일단 보편의지로 상정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곡될 때가 있지요. 그럴 경우 시민은 투쟁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야말로 진정한 보편성-공공성이라는 논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국립1등대 교수님들의 성명을 보면 그 보편성-공공성 층위의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그저 지들 학교 얘기, 지들 학교 얘기, 지들 학교 얘기뿐입니다. 그러면서 자율 달랍니다. 도대체, 정부는 경제나 신경써라 교육은 우리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논리가 어떻게 국립1등대 교수들 입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그게 말입니까, 똥입니까?
백보 양보해서 보편성, 공공성 다 때려치고 서울대가 오매불망 주장하는 “우리들이 이 나라 최고 인재 독식하겠다. 건들지 마라.”를 인정한다 합시다. 서울대 2008년 입시안이 과연 최고 인재, 다양한 인재, 창의력 있는 인재 뽑겠다는 안입니까?
통합교과형 논술과 특기자 전형은 무조건 강남 아이들과 특목, 자사고 아이들을 위한 무한 사교육비 전형이고, 지역균형선발을 통해 들어올 지방 수재의 수는 미미합니다. 그 지방 수재조차도 현행 중등교육의 파행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 잘 사는 집 아이가 될 것입니다.
결국 서울대가 말하는 최고 인재란 여유 있는 부모의 관심 속에 사교육비를 듬뿍 먹고 자란 아이 즉, 기득권층 자녀를 말합니다. 창의성은 개뿔!
서울대 교수님들이 정부더러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나 신경쓰고 자기들 하는 일엔 신경 끄라고 했죠. 어이구, 이 선생님들아 당신들이 바로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셈. 자기들이 얼마나 우리 공동체에서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덩이인지조차 모르는 땡깡맨들이 국립1등대 교수로 퍼질러 앉아 존경받는 것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셈, 이 선생님들아.
국립1등대의 정신이 공화국 시민정신을 잃어버리고 땡깡만 부리는데 이 나라가 어떻게 성숙한 시민사회로 바로 설 것이며 헌법 제 1조의 이념이 실현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탐욕, 탐욕, 탐욕에 가득 차 수치를 모르는 저들만의 국립1등대. 세금 먹는 하마 국립1등대. 공동체의 공공적 지평엔 관심조차 없는 국립1등대. 어떡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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