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의 문제야. 다른 나라 탓을 해서야 되나... 군은 군대로 임오군란에다, 백성은 백성대로 동학 난에다, 왕은 왕대로 약소국인줄 모르고 고집부리다가... 그렇게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어서야...외세에 밀리면서 민란까지 일어날 정도가 되었으면 왕은 백성들의 뜻에 따라야지... 똘똘 뭉쳐서 다 같이 죽자는 각오를 해야 뭐가 돼도 되지. 사이고마데(さいごまで), 일심으로 단합해도 모자랄 판국에 말이야. 한심하게 외국군을 빌어다가 자국 백성까지 죽이고서야. 그러고서 망하지 않을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어? 그러고서 남의 나라 탓이나 계속해봐야 뭐가 나오겠어?.....그래서 이런 개판이 된 것이야...만주에서 걸리고 낙동강에서 딱 걸려서는...중간에서 죽어나는 신세가 된 것이야.”
잠시 사무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꼬대를 하듯이 말했다.
“쓰시마, 쓰지마, 쯔시마, 쓸지마...그곳을 건너가면 나가시키. 영어로는 Tsu, shi, ma.”
“아니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까?”
“ 아참, 내가 왜 이런 말을, 나이가 들다보니...자네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어 본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그동안 東京에 많이 있어서 잘 몰라서 묻는 말이야. 사실 대로 대답하면 자네 담당 보급품에 관련한 문제는, 내 다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이렇게 있어도 구한말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山戰水戰 다 겪어 본 사람이야...그러니 염려 말고 아는 대로 대답해주면 좋겠어...동해 쪽의 죽도(竹島)를 여기서는 이렇게,”
그리고 들고 있던 신문지에 글자를 써 보였다.
--- 다깨始魔 ---
“이렇게 암호처럼 쓰고 있다는데, 조센징 생각으로는 ‘다 깨기 시작하는 마귀’라는 뜻을 줄여서. 이것이 정말 사실이나?”
“글쎄, 그것은 처음 듣는 말입네다. 저는 여직 북조선에서 더 많이 살아서 말입네다. 소학교 시절에 선생이 하신 말씀으로는 독으로 이루어진 섬이어서 독도라는 말을 얼핏 들었디요.”
“그래, 그럴 거야. 삼팔선 남쪽 해안지방 사투리로는 ‘돌’을 ‘독’이라고 하니까. 그러다가 과거 글 잘하는 고위층들이 ‘독’이라고 하였던 모양이지... ‘しま(시마)’를 조선어 ‘섬’으로 옮기면 ‘ㅅ’하고 ‘ㅁ’이 같아. 같은 뜻이되 넓어지고 좁아지는 글자야. 어쨌든 그러면 이것은 랄고 있나?”
--- ひろ始魔---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번 전쟁 때 누군가 이렇게 고쥬온즈(五十音圖)하고 한자를 섞어서 미국 정보부에 제출한 자가 있다는 말이 있어. 이것을 누가 했는지 참말 모르겠단 말이야.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조선인지 말이야. 아니면 미영연합군측에서 거짓으로 만들어 흘린 정보인지 말이야. 그렇지만 않았더라도 원자폭탄 마귀가 떨어져서 조선 땅에 이런 개판 전쟁이 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암튼 세상은 요지경이야.”
이렇게 매우 복잡한 말을 해가면서 안심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그럼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이상야릇한 글자를 써 보였다.
--- おkey나와 ---
“글쎄요. 일본어에다 영어까지 섞어 놓은 것 같으니.”
“바로 그렇다네. 미점령군이 주둔한 얼마 뒤의 일이야. 도화지도 귀한데.....오키나와에 사는 어떤 꼬마가 들고 다니는 종이에 이런 글자가 써있었다는 거야. 일본과 미국과 남조선이 서로 연합되었다는 것은 그런대로 쉽게 알 수 있어. 그런데 일본인이 썼는가, 서양인이 썼는가, 조선인이 썼는가에 따라서 그 뜻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져. 바로 이것이 문제야.”
어딘지 모르게 군인보다는 학자가 더 어울려 뵈는 사람이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진지한 탐구심으로 자신이 쓴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장난삼아 그랬겠지요.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러자 이맛살을 찌푸려가며 말하고 있었다.
“글쎄,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 외의 지역에서 조선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요시찰 대상이었어....연합국 특수정보부대에서 한 짓인지. 국제 공산당과 연계된 일본 내 공산주의자들이 한 짓인지. 아니면 그 꼬마가 장난삼아 그린 그림에 불과한 것인지...이것이 참말로 궁금하단 말이야.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 20년은 더 살다가 죽고 싶은데 말이야. 손자 재롱이나 더 보다가 말이야. 아무튼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U상관은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 보였다.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 오래있다 보면 터무니없는 것까지도 의심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여기는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야. 그런데 말이야. 신경을 딱 끊기도 어려운 곳이야. 아, 사백년 전 과거 임진년 고토회복 전쟁에 실패한 뒤에 내지로 건너간 과거 조선인들이 많았으니,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말만 다르지...현재 조선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으면 되지. 연구를 하면 할수록 내 윗대 할아버지도 조선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조선독립군하고 일본군하고 싸운 것도 다 동족상잔이야. 시간이 길다 짧다 뿐이지. 현재 남조선과 북조선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하고 똑같아. 나중에 말이야. 남조선 자네 자식들하고 북조선 자네 형제가 낳은 자식들하고 전쟁을 벌이면 누구를 편들겠는가?”
대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이었다.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U상관은 정년이 훨씬 넘었다는 이유로 퇴직하여 갔다. 전시하의 군인은 심한 부상이나 죽기 전에는 퇴직도 안 된다는 불문율이 깨지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 길던 전쟁은 지도에 휴전선(休戰線)을 그으며 끝이 났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때의 비용이 들어갔다. 그리고 2차 태평양 대전보다 많은 포탄이 터졌다고 한다. 부상자를 제외한 참전 외국군은 약 30%가 전사했다. 남한은 부상자를 뺀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가 약 3,000,000 명이 넘었고 이산가족도 약 10,000,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1945년 해방당시 남북한 인구가 약 20,000,000 名이었음을 감안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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