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군대들
이팔웅 논설위원 2003. 4. 14. 한반도의 2배 정도 크기의 이라크 영토가 개전 3주를 넘어서자 미 영연합군의 의해 거의 장악되었다. 그것도 12만명 정도의 병력으로 프랑스 만한 나라를 장악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지상 전투에서 이라크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미군의 탱크는 단 한 대도 없었으며 이라크의 전투기들은 하늘로 날아 오르지도 못했다.
연합군의 전사자는 모두 136명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전쟁이 진행되었을까? 전쟁사를 들춰보아도 이런 전쟁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것도 세계 강군으로 손꼽히는 이라크군과의 대결에서 말이다.
제1차 걸프전으로 병력 3분의1을 잃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이라크는 현재 40여만명의 정규군 병력과 탱크 200대, 대포 2,100문, 전투기 200대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라크군이 미 영 연합군 앞에서 변변한 전투한번 치르지 못하고 맥없이 붕괴된 것이다. 속빈 강정이다. 이라크 땅이 미군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 치던 이라크 지도부의 행방도 오리무중이다.
이라크의 막강한 군대가 이처럼 허물어진 것은 왜 일까? 독재자 군대의 속성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독재자의 군대들은 제3자의 시각에는 매우 강한 군대로 비쳐진다. 그리고 그 군을 앞세워 철권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의 군은 독재자 앞에서는 충성을 맹세한다. 그러나 그 독재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독재자를 위해 결사 항전의 의지는 온데 간데 없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미 공군이 후세인이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장소에 조준 폭격을 했다. 또 지상군은 바그다드 시내의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그리고 후세인이 사망했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흘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라크군의 전의는 급격히 꺾였으며 군복과 총을 버리고 집단 도주하는 것도 목격되었다.
미군의 최신예 첨단무기의 화력에 이라크군의 예봉이 꺾였을 것이다. 지휘와 무기체계가 운용 불능에 빠져 저항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전의와 사기는 높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조짐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또 시민들은 미군이 진주하자 환영하면서 후세인의 동상을 파괴했다. 길거리에 나딩구는 동상조각을 마구 짓밟는 현상까지 일어난 것이다. 이라크 국민들이 후세인의 학정에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태다.
또 하나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라크군 전사자수와 포로수 등이 아직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군인들은 어디에 포진했으며 또 전열를 재정비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에 대한 보도는 없다. 그렇다면 이라크군 대부분은 전의를 상실한 채 살길을 찾아 탈영해 흩어졌을 개연성이 높다. 독재자군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독재국가의 힘의 중심은 군이 아니라 독재자 그 자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독재국가와 전쟁을 벌일 경우 초전부터 독재자를 표적해 공격해야 한다는 전략가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제 이라크전쟁이 마무리 돼가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북한으로 쏠리는 것 같다. 우리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김정일은 십자로에 서 있다.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기회의 길로 아니면 핵 개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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