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자유게시판 > [당선무효] 우리사회가 양심 속여선 안돼"

5일째 단식중인 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우리사회가 양심 속여선 안돼"

외국인 노동자 2만여명이 살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본동. 거리 곳곳에서 동남아와 중국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길을 묻고 싶었지만, 한국인인지 중국 한족인지 몽골인인지 몰라 망설인다. 그때 원곡본동 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허름한 주택의 옥상에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라는 간판이 보였다.
소장인 박천응(42)목사가 지난 1994년부터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몸담고 있는 현장이다. 그는 지금 단식중이다. ‘산업연수제도 폐지와 고용허가제 실시’를 주장하며 16일로 4일째이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노동자센터로 들어가니 박 목사가 있는 2층 방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자료와 기독교 서적으로 가득차 있다. 박 목사는 기운이 없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노동부는 현재 고용허가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산업연수생 신분 대신 노동자로 인정,노동3권을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계와 일부 정부 부처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말이 ‘산업연수생’이지, 실질적으로는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 아닙니까. 왜 이를 부인하는 것입니까. 법원에서도 ‘근로자로 봐야한다’는 판결을 내렸지요. 근로자를 두고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는 현실 자체가 부도덕합니다.”

아무리 그의 말이 옳더라도 제도 개선 때문에 밥을 끊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16일 국회에서 법안 심사를 시작해 공청회를 거쳐 21일쯤 표결을 하게 됩니다. 이번 주가 고비인 셈입니다. 그동안 항의 시위도 해봤고 국회에 찾아가 의원들을 만나 설득도 했고, 자료도 제출했으며 토론회에도 참여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본 셈입니다. 차별없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제 남은 일은 이제 단식과 기도 뿐이었지요.”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하게 발언하던 그의 말이 잠시 끊겼다. 목이 메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박 목사의 얼굴에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사회가 더이상 양심을 속여선 안됩니다. 외국인노동자들은 한달에 50만원을 저축하더라도 2년은 꼬박 모아야 한국에 올 때 브로커에게 주었던 원금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돈을 벌려고 하면 곧 고국으로 돌아갈 시한이 됩니다.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지요.”

이 때문에 산업연수제를 도입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전체 외국인노동자 가운데 불법체류자의 비율이 80%, 일본의 경우 42.7%에 이른다고 했다. 정부는 오는 8월까지 불법체류자들의 체류를 연장해주기로 했으나, 박 목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했다.

“힘없고 가난한 소수자들은 살기 너무나도 힘든 것이 한국 사회입니다. 7년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오는 23일 스리랑카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 마노즈(32)씨는 ‘한국에선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12시간 밤낮으로 맞교대를 하는데도 업주들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욕설과 구타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가 한국을 떠나며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저를 위로했을 땐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단식은 일단 국회 통과가 예정돼있는 21일까지 계속된다. 오전에는 기도와 명상으로 보내고, 낮에는 가지치기로 잘려나간 가로수 나뭇가지를 쓰레기장에서 모아와 깎고 다듬어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박 목사는 나무 십자가를 ‘쓰레기 십자가’라고 불렀다. “주류에서 소외됐지만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귀한 것이 될 수 있지요. 외국인 노동자 역시 뿌리를 떠난 사람들이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쓰레기 십자가를 하루 10~15개씩 만들어 센터를 방문하는 손님에게 나눠준다. 저녁에는 외국인 노동자 20여명이 찾아와 그와 함께 단식과 기도를 한다.

박 목사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될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되도록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의 목에 그는 ‘쓰레기 십자가’를 걸어줬다. 직접 쓴 시(詩)도 건네줬다.

“저주스럽게 팔 잘린 외국인 노동자 이 아픔 천벌 받은 사람 같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 제도가 아니건만 이쩌자고 이 싸움터에 있는가.

가슴 움켜쥔 눈물 고개 숙인 굶주림이 국회의사당 문고리 잡아흔들 수 있다면

죽으면 죽으리라 비장하게 엎드리어 그렇게 기도드립니다.”

(김성현 기자 [email protected] )

7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