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마지막 남은 스탈린주의적 전제체제이며 최악의 인권유린국인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지금 국제사회를 상대로 그야말로 건곤일척의 한판승부를 걸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세계 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5일 새벽부터 그들이 보유한 단․중․장거리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함으로써 승부수를 던졌다. 따라서 만약 김정일의 북한이 이 승부수를 쥐고 게임에서 이긴다면 북한체제의 생존력을 강화시키고 정권의 안정도 기할 수 있겠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스스로 최악의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가히 ‘김정일식 도박판’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일의 오판과 몰락
물론 이 도박에서 김정일의 북한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우선 상대인 미국의 입장이 어느 때 보다 강경하다.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고, 일본은 물론 미국의 본토까지 위협하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금의 미-북간 대립은 일종의 제로섬(zero-sum) 대결의 성격을 띠고 있다. 15억 불이 투자된 신포 경수로사업이 파산되었고,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김정일 정권에 관해 94년 1차 핵위기 이후 충분하게 학습한 미국 정부가 이번에는 결코 양보하거나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피차간 퇴로가 없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북한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 사회간접자본난, 후계체제 구축난으로 정리되는 이른바 5대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어 의존하는 것 말고는 북한 스스로 소위 주체적,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북한에게는 여유 있게 긴장을 즐길만한 환경이 아니다. 그들은 조급하고 서두르고 있다.
셋째는 이번 미사일 도박으로 인해 북한의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었던 한국정부가 결정적으로 고립된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제 공조력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국론은 이미 갈갈이 찢겨져 있는 상태이다. 노무현 정부로서는 더 이상의 명분이 없다.
마지막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도 핵문제, 미사일 문제뿐만 아니라 위조달러 제조문제 등에 있어서 김정일 정권의 입장을 끝까지 옹호할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이번 미사일 도박은 명운을 다한 김정일 정권이 다급한 가운데 벌인 ‘오판’으로, 그 결과는 김정일의 몰락을 앞당길 것으로 판단된다.
대북포용정책의 파탄
한편 이번 김정일의 미사일 도박은 한국정부의 대북포용정책(햇볕정책)에도 결정적 파탄을 가져왔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은 구소련의 붕괴에 따라 진영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사라진 구조에서 북한정권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이른바 구조-행위자 분석틀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햇볕을 쏘이면 제아무리 김정일이라 해도 외투를 벗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일 정권이 변할 것이라는 믿음, 조건 없는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앞당길 수 있다는 논리, 그렇게 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나아가 통일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었다. 햇볕정책이 진행되는 동안 김정일 정권은 더 오만해졌고, 급기야 핵 보유 선언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까지 시험발사했다.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는 군사안보관계의 신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이고 무절제한 햇볕정책의 결과이다. 이른바 정․경 분리를 내세워 ‘평화비용’ ‘통일비용’이라는 명분으로 김정일 체제유지 비용을 지원해 온 것이다. 이러한 지원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오히려 변화 동력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대중 -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대북정책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의 이번 미사일 도박은 정상적인 방법과 상식적인 수준에서 국가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수백만의 인민을 희생시키고 인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눈길도 지극히 차갑다. 김정일 정권은 남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화해․협력을 명분으로 철두철미하게 실리를 취하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 친북 반미 선전선동 공작으로 한미관계를 이간시키고 있다. 나아가 대남사업으로 얻은 소득은 식량난 해소 등 인권개선에 쓰이지 않고, 선군정치라는 슬로건 하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거나 좌시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인 포용정책이 아닌 채찍과 당근을 병행한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대북정책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관건이다.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국제공조를 소홀히 해온 햇볕정책이라는 소위 기능적 통일전략은 이질체제와 이념 앞에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지난 몇 년간 충분히 증명되었다.
대북정책은 이상주의적 민족국가 구현이 아닌 주어진 객관적 사실과 현실을 직시한 가운데 수립되어야 한다. 지금 김정일의 미사일 도박은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당장은 위기이나 이를 통해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홍성이 (자유주의연대 정책위원)
209597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