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 8.22)
정부가 5월 퇴직 관료들의 산하 기관 낙하산 투하를 막아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뿌리 뽑겠다고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 감사 6명이 모두 정치권 인사들이라고 한다. 한국관광공사와 한국남부발전 감사는 지난 대선 때 여당 캠프 출신이고 한전원자력연료와 한국거래소,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중소기업유통센터 감사는 각각 전 여당 국회의원이나 시도당 간부들로 채워졌다. "관피아 대신 '정피아(정치인+마피아)' 세상이 됐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304개 공공기관이 지고 있는 빚이 지난해 말 523조200억원이나 된다. 최근 드러난 원전과 철도 비리에서 알 수 있듯 공공기관 내부의 부정부패 문제도 심각하다. 업무 감찰과 회계 감사를 맡고 있는 감사들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정치권 출신이라고 해도 능력과 자질만 갖췄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에 어린이집연합회 회장 출신에게 중소기업 지원 업무, 경제학 교수에게 발전소 일, 금융 분야 경력이 전무한 변호사에게 증권·선물거래, 코미디언 출신에게 관광산업 진흥·연구 개발 일을 감사하라고 맡겼다. 이 가운데는 회계장부 보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감사를 사장 보좌 역할로 알고 있는 한심한 인물도 있다. 무원칙한 인사의 전형이다.
공기업 감사는 공모 절차를 거치게 돼 있지만 결국엔 청와대가 낙점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과거 정권들도 낙하산 인사를 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는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공언했고 최근에는 공공기관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왔다. 기획재정부는 올 2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앞으로는 일정 기간 해당 업무 경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공공기관 감사가 되지 못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래 놓고선 공공기관 감사 자리를 정권의 '사은품'인 양 정치권에 나눠주고 있다. 이런 염치없는 일을 하면서도 입만 열면 국가 혁신을 외치고 있는 이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무슨 교훈을 얻은 것인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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