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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한반도에서 날아간 돈

앉은 자리에서 돈이 날아가고 있다.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가 또 있네’ 하고 주식 투자자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석달 전 북한이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해서 세계를 놀라게 한 이후 이달 11일까지 우리나라 증시에서는 70조원이 넘는 돈이 날아갔다. 종합주가지수가 708.3(2002년 12월13일)에서 532.53으로 24.7%나 빠지는 바람에 증권거래소에서 67조원이 사라졌고, 코스닥지수도 33.8%가 떨어져 4조5천억원이 자취를 감췄다.

이라크 전쟁 위협 등의 여파로 전 세계 증시가 다 함께 고전하고 있지만, 벨기에나 네덜란드 같은 작은 시장을 빼고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증시의 가격 하락 폭이 가장 크다. 한국 사람들의 화끈한 기질 탓인가? 그것보다는 남다른 북한 핵 변수가 시시각각으로 한반도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다. 미사일 발사 실험 등 북한 관련 뉴스가 시장에 도착할 때마다 주가지수는 경기를 일으키듯 떨어진다. 요 며칠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이 겹쳐 금융위기, 경제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앞으로도 북한이나 미국이 또 어떤 악재를 추가할지 모른다.

우리는 평소에도 ‘분단된 땅’에 산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많은 비용을 치러 왔다. 엄청난 돈을 국방비로 쓰고 있고, 외국에서 돈을 빌려올 때도 ‘지정학적 위험’이라는 게 감안돼 더 많은 이자를 주어야 한다. 물론 남북관계가 화해 기류를 탈 때는 이런 가산금리가 떨어진다.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요즘은 어떤가? 우리 정부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외평채)의 금리가 치솟아 만기 연장 시기를 미루어야 할 지경이고,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던 금융기관 중에는 조건이 나빠 포기한 곳도 있다. ‘평화가 곧 돈’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퍼주기’를 비난했지만, 지난 몇 년간의 남북 화해로 인해 우리가 ‘덜 잃은 돈’을 계산해 보면 그건 정말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한반도 평화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까? 정부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미국까지 달려가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앞으로 이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기라도 하면 시장은 또 한번 충격을 받을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부시 정부가 이라크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북한을 본격적으로 ‘손보겠다’고 나서면 또 어떤 사태가 빚어질지 알 수 없다. ‘남은 것은 핵밖에 없다’는 듯 ‘막 가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북한 정권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부시 정부의 비타협주의와 북한 정권의 모험주의 사이에서 우리는 요동치는 금융시장과 확산되는 경제불안에 꼼짝없이 시달려야 할 처지다.

그런데 여기에 남북관계까지 악화되면 어떻게 될까? 대북 송금관련 특검법 논란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을 보면 상황에 따라 앞으로 남북관계마저 경색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남북간 경제거래에 대해 특검을 하면 대화가 끊기고 말 것’이라는 북측의 경고는, 그것이 우리가 볼 때 마땅하냐 아니냐를 떠나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외압에 의한 대출과 기업의 분식회계까지 조장했던 대북 송금사건의 실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핵문제를 놓고 어떻게든 북한을 설득해야 할 이 마당에 대화 채널까지 막힐 가능성이 있다면 실상을 규명하는 방식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참 어려운 처지에 있다.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를 무시하고 있고, 야당 등 국내 반대자들은 그의 통일외교 정책 등에 대해 ‘꼬투리만 있으면 물고 늘어지자’는 심산인 것처럼 보인다. 기득권층을 향해 개혁의 기치를 높인 그에게는 ‘어디 잘 되나 보자’고 벼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보인다. 어떻게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도움을 이끌어내 핵문제를 해결해야 할텐데, 당장은 그를 흔드는 국내 변수들에 휩싸여 겨를이 없어 보인다.

북한 핵과 남북문제에는 국민의 생존과 나라 경제의 운명이 걸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조차 정쟁의 논리가 앞선다면 이 나라는 폭풍우 속에서 선원들이 패싸움을 벌이는 여객선 꼴이 될지도 모른다. 반대할 일은 하더라도 난파선이 될 위기만은 힘을 합쳐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제정임/칼럼리스트 [email protected]〉

최종 편집: 2003년 03월 13일 18: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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