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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뒤바뀐 ‘허황된 거짓’에 이유가 없다

[이기호의 폴리스코프] 92년 거짓이던 ‘반값 아파트’ 지금은 가능?

입력 :2007-01-19 15:10:00 이기호 ([email protected])기자

‘Poliscope’는 정치(politics)와 망원경·현미경 등 관찰기구(scope)를 합성시킨 용어로 한 주 동안 있었던 정치권의 움직임을 돌아보고, 새로운 한 주의 정치를 전망하는 코너입니다. 또 특정 사안에 담긴 의미를 집중분석하거나 해석하는 코너이기도 합니다. 망원경처럼 멀리 폭넓게 정치권을 바라보고, 현미경처럼 세심하게 핵심을 짚어보는 기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 주>

▲ 이명박 전 서울시장 ⓒ 2007 데일리서프라이즈

‘안티 노무현’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쉽게 덧씌우는 ‘고정관념’ 중에 말(言)이 있다. 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성대모사 됐던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독특한 어투를 선보였다. 좋게 말하면 진솔하고 담백한 어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투박하고, 직설적이다. 어떻게 얘기해도 전통적 의미의 ‘대통령 어법’과 차이가 있다는 뜻일 게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반 검사들과의 만남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대통령 못해먹겠다” “다른 데선 덜렁덜렁하지만 북핵문제만큼은 섬세하게 짚어보고 신중하게 한다, 속된 말로 통박을 굴린다” 등 ‘서민적 어법’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에 의해 본뜻과는 달리 전후 맥락 없이 와전된 내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보수언론과 야당에 의해 꾸준한 가십거리로 사용됐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은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는 다소 ‘긴 발언’의 일부로 ‘대통령을 그만 두겠다’는 요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못해먹겠다’는 발언만 부각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 12월 14일의 ‘불법자금 규모 10분의1’ 발언이 가장 아쉽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이미 “정치상황에 대해 정치적 신의를 걸고 한 발언으로서 법적인 의무나 책임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재신임 여부를 걸었던 17대 총선에서의 승리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결국 ‘숫자놀음’을 자초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구설수 오른 ‘현직 대통령’… ‘차기 대통령’은?

화자(話者)의 의도와 무관하게 청자(聽者)에 의해 ‘재단’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특히 화자의 대표성이 커질수록 청자의 기대와 요구치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유교적 ‘점잖함’에 익숙한 우리 민족 특유의 정체성이 원인일 수도 있고, 대통령을 ‘군주(君主)’와 동일시하는 잔존하는 권위주의적 사고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 이 전 시장이 2005년 여의도연구소 초청특강에 참석해 땀을 닦고 있다. ⓒ 2007 데일리서프라이즈

여하튼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고 있고, 현재까지 가장 큰 ‘피해자’는 노 대통령으로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이전의 대통령들이 노 대통령보다 더 점잖았었는지, 아니면 당시의 보도방식과 현재의 보도방식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의 ‘서민적 어법’은 한나라당에 의해 마치 ‘고졸대통령’의 한계인양 비하되기도 했다.

비난 받는 현직 대통령의 ‘서민화법’은 대단히 유력한 ‘차기 대통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파격화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옷을 사 입을 정도면 월급이 많은 것 아니냐”(2003년 8월, 1인 시위 중인 사회복지사에게), “부실 교육의 핵심은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이 모두 시골 출신이라는 데 있다”(같은 해 11월)는 등의 발언도 별로 ‘대통령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2004년 7월), “행정수도 이전을 못하게 하려면 군대라도 동원하고 싶은 심정”(2005년 2월), “부동산정책은 중앙정부 아닌 군청 수준”(같은 해 6월), “과거사 들춰 문제 삼으면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 기업인은 한명도 없다”(같은 해 8월),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갔다”(2006년 3월) 등의 발언도 논란을 야기했다.

92년 ‘허황된 거짓’ ⇒ 07년 ‘충분히 검토 가치 있다’

하지만 ‘파격화법’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말 바뀜’이다. 이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13일 충북대 초청강연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이른바 ‘반값아파트’에 대해 몇 가지 단서를 달았지만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일에는 “투기 목적은 안 되고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서민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나아가 지난 연말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반값아파트의 실효성에 대해 “사유지가 많기 때문에 대량물량공급은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정권이 바뀌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젊은 부부들에게 집 한 채 씩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만의 노하우”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992년 대선에서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정주영 현대회장의 ‘아파트 반값 제공’에 대해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아파트 반값, 금리 6% 등이 허황된 거짓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반박하고, “나는 YS를 가까이에서 보고 그분이 경제철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제철학’에 경탄을 표한바 있다.

92년엔 ‘허황된 거짓’이었던 ‘반값 아파트’가 왜 지금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를 가지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게다가 이 전 시장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YS의 경제철학’은 하필 IMF라는 ‘놀라운 결과’를 초래했다. 이 전 시장은 93년 정 회장의 정계은퇴에 대해 “정 대표는 변덕이 죽끓듯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했지만 2005년에는 ‘우상’으로 묘사됐다.

말을 바꾸려면 그만한 명분을 갖추라

▲ 이 전 시장이 200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2007 데일리서프라이즈

말을 거칠게 하는 것 못지않게 나쁜 경우는 명분 없이 말을 바꾸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인물들이 명멸해갔지만 신의를 지켰던 인물은 추앙을 받고 신의를 지키지 못했던 인물들은 웃음거리가 된다. ‘장부일언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이란 말도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백성의 신의를 얻기 위해 준비된 ‘쇼’를 펼쳤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는 ‘4년 연임제 개헌’도 마찬가지. 지지율을 독식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유력 인사들이 꾸준히 개헌의 필요성과 구체적 시기를 제시했다가, 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제안하자 “지금은 아니다”며 말을 바꿨다. ‘노 대통령은 아니다’는 명분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다지 명쾌하지는 않다. 대통령의 인기가 별로라 그나마 버티는 형국이다.

한나라당만 탓할 일은 아니다. ‘백년정당’을 자임하며 정치개혁을 역설했던 열린우리당의 최근 모습은 국민에게 ‘영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대대적인 물갈이라도 할 것처럼 ‘개혁’을 내세웠다가 총선 이후 ‘실용’으로 돌변해버리며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스스로 무너뜨린 자충수는 ‘탄핵으로 지갑을 주웠다’는 비아냥거림을 야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일 수밖에 없다. 말이 좀 투박해도 내용이 진실하면 결국 옳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고, 아무리 표현이 그럴듯해도 본질적으로 교언영색(巧言令色)에 그친다면 후대의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의 일부 정치인처럼 말도 거칠고 내용도 천박하다면 아예 논할 가치도 없어지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반값아파트’도 이 전 시장의 ‘신혼부부 1채씩’도 모두 덤덤한 반응뿐이다. 지난 연말 김종인 민주당 의원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61.6%가 ‘반값아파트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전 시장의 ‘신혼부부 1채씩’은 아예 ‘실현가능하지 않다’는 응답이 83.5%에 달했다. ‘실현 가능하다’는 대답은 7.8%에 불과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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