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결론뻔한 수사 또 하는가.........朴廣作
장소는 어느 호텔 지하주차장. 한적하고 후미져서 두렵기도 한 곳이다.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중년의 한 사내가 경계의 눈초리로 이리저리 살피더니, 기다리고 있는 듯한 다른 승용차의 한 청년을 알아보고는 커다란 쇼핑 백 2개를 들고 그곳을 향해 다가간다.
이미 차에서 내려 서있는 30대의 청년과 몇 마디를 나눈 후 승용차 뒤의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꽤 무거운 쇼핑백을 옮겨 실었다.
이렇게 나라종금 주인의 개인자금(혹은 비자금)에서 나온 2억원의 현찰이 당시 집권 여당의 부총재 측근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어느 범죄 영화의 한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것은 실제로 거액의 현찰을 전달했던 나라종금 주인의 자금관리인이 진술한 내용을 재구성해본 그림인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라 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사건에서 생수회사 투자자금이란 명목으로 현찰 2억원이 우리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어리벙벙하게 만드는 장소와 절차에 따라 전달되었던 것이다.
물론 현금 수령자의 또 다른 진술도 있긴 있다. 호텔 지하주차장이 아니고 호텔 1층 로비 라운지가 전달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쇼핑백에 넣은 거금의 현찰 2억원이 소위‘투자금’으로 전달되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무슨 구린내나는 흑막이 있지 않은가 하고‘오해’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됐다.
현찰 2억원이면 미화 16만달러에해당하는 거금이다. 이것이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이렇게 전달되었다면 마약거래자금 등 불법자금이 전달되었다는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라면 곧바로 FBI의 내사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게 뻔하다. 우리나라에도 배심원 제도가 있다면 전달 방법과 전달 장소의 정황만 갖고도 무엇인가‘비정상’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입각, 배심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럼 다른 한 장면을 보기로 하자. 이번에는 종합금융회사를 부실하게 운영하여 풍전등화와 같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금융회사의 주인이 등장한다. 그는 대리인을 시켜 서민들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돈 5000만원을 권력층 주변 측근에게‘생활비 명목’으로 주었다.
거룩하신 예수님과 부처님처럼 맘좋은 스토리다. 부모형제가 아닌 인간관계에서 어느 공인(公人)이 5000만원을 현찰로 받은 후 아무런 대가성이 없는 생활비 보조라고 진술한다면, 예수님·부처님이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많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무죄 방면해야 할 것인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될 공적 자금 2조998억원이 투입되었으나 결국 퇴출당한 나라종금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재개되었다는 뉴스가 마치 어두운 불황 속에서 한 줄기 정의 구현이란 희망을 가져다줄 듯이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결론이 뻔한 수사가 아니냐고 국민들은 수군거린다.
지금까지 권력 주변과 관련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가 대부분 여론의 압력하에 억지 춘향이나마 마지못해 이루어지다가‘적당한 선’ 에서 면죄부를 주는 결말로 매듭지어졌다는 과거의 경험과 회상하기 싫은 서글픈 기억들 때문에 이번에도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이“조작된 정의는 가장 사악한 부정”이다. 밑도 끝도 없이 집권층은 ‘개혁’이란 물신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최고 권력자의 측근 수사를 해달라고 자진해서 검찰에 요청했다는데, 2억원짜리와 5000만원짜리 현찰 거래라도 제대로 밝혀낼지 두고 볼 일이다. 사법 당국이 합리적 자본주의 시장 질서의 또 다른 측면인 사회기강과 법치질서를 바로 세울 것을 기대해본다.
(朴廣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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