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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국립암센터에서 배우자
모든 시스템 고객중심으로

=>과 폐지하고 장기별 센터 도입 … 의사.간호사 순환근무 폐지해 전문성 확보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가 검찰조직 안팎에서 뜨겁다. 사회의 부패한 곳을 도려내는 검찰은 암을 수술하는 의사와 공통점이 많다. 개원한지 몇 년 만에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국립암센터 성공사례를 통해 검찰개혁의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는 평가다. /편집자 주

국립암센터는 1989년에 설립법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국민 혈세가 낭비될 것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발의한 지 10년이 지난 2000년 3월 발족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출발과정의 어려움과 왜곡된 시선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돌파했다.

법안 발의에서부터 초대원장과 2대 원장을 맡아 국립암센터의 탄생과 성공적인 착근을 이룬 박재갑 원장은 이제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 눈을 돌리고 있다. 한창 논란중인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도 박 원장은 기관끼리의 권한다툼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고정관념을 깨라 =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2000년에 설립한 국립암센터. 사령탑을 맡은 박 원장은 고민을 거듭했다. 이미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대학병원과 대형병원들 사이에서 신생 국립암센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걱정 또한 없지 않았다.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발상의 전환이다. ‘철저한 환자(고객)중심’이 바로 그것.
첫 단계로 다른 모든 병원에 있는 ‘과’를 없앴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 등이 없어진 것이다. 대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위암센터, 간암센터, 대장암센터 등 장기별 센터다. 위암이면 위암, 대장암이면 대장암이지 외과 위암이 따로 있고, 내과 위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환자들이 병원의 여러 과를 돌아다니면서 진료와 치료를 받는 시스템은 결국 환자가 아닌 병원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근본부터 바꿔버린 것이다.

의료진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따라 장기별 센터에 함께 소속되고 회진도 함께 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동도 없다. 그야말로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다.

의사만이 아니다. 간호사들까지 같은 방식으로 운영했다. 가령 간암센터 간호사나 위암센터 간호사가 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간호부나 간호과에 소속돼 순환근무를 하는 기존시스템을 거부한 것이다. 채용 때부터 퇴직 때까지 센터에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세계최고 00암 전문 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환자중심의 사례는 훨씬 많다. 사망률이 높은 순서에 따라 층별 배치를 달리하고 병실밖에 있는 입원환자 이름표도 없앴다. 또 환자복에 암이라는 글자를 없애는 등 작지만 환자입장에 서보면 느낄 수 있는 배려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검찰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수사의 전문성 확보와 고객중심(피의자, 참고인 등)의 화두를 해결하기 위해 참고할 만 하다는 평가다.

◆외압과 비리막는 투명한 공개 =암센터의 경영기법 가운데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철저한 공개원칙이다. 암센터의 정식직원 600여명은 대부분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이들을 채용하는 과정과 처우에 대해 투명한 공개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청탁이나 압력 등 비정상적 인사를 막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온라인으로 응시하고 실무부서에서 관심대상을 추천한 뒤 인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영어활용능력시험인 텝스(TEPS)와 전산활용능력시험인 이-테스트(e-test) 성적을 함께 요구했다. 실력 없는 사람이 외부 연줄만 믿고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비리의 가능성도 원천봉쇄했다. 이를 위해 전문직종 외의 식당 경비 청소 등 일반직종은 전부 아웃소싱했다. 물론 선정하는 방식은 공개입찰이며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한다.

또한 박 원장이 암센터와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혼자 하는 법이 거의 없다. 공개하지 않는 곳에 의심과 불신이 생기는 법. 궁극적으로 부패와 비리가 생길 수 있는 토양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박 원장의 소신이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받아 온 검찰이 외풍을 막고 내부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해법 또한 투명공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계와 경쟁하라 = 암센터가 생긴지 2년 뒤인 2002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엠디 앤더슨 암센터의 멘델슨 원장이 국립암센터를 방문했다. 우수한 장비와 인력에 극찬을 했고, 행정부원장을 보내 시스템을 배워갔다.

또 일본의 국립암센터 원장도 암센터를 본 뒤 병원장을 2박3일 동안 보내 운영시스템을 배우도록 했다. 불과 5~6년 만에 30년 앞선 일본과 50년 앞선 미국과 경쟁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내부갈등은 최소화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우수한 인력을 위한 끊임없는 지원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재갑 원장은 사법개혁, 수사권 조정이라는 과제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검찰에 대해 새로운 마인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 원장은 “의사가 잘못하면 생명을 앗아가고, 검사가 잘못하면 생사람을 잡아가두게 되는 만큼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고 전제한 뒤 “의사야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지만 검찰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일종의 독과점 같은 것이므로 훨씬 더 고도의 서비스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민들 관점에서 보면 기관끼리 싸우지 않고 윈윈이 가능할 것”이라며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법조계가 권한다툼만 할 것이 아니라 세계의 법률시장을 개척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모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email protected]> 164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