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3/ 깊은 우물을 파 놓은 사람
삼성그룹 창업자이신 이병철님은 오늘의 삼성 가족 전원이 마시고도 남을 만큼 많은 맑은 물이 퀄퀄 솟구치는 깊고 큰 우물을 파 놓으신 분이라고 봅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이병철님은 일본인들한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제일 먼저 간파하고 그대로 실천한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본인들이 패전 후 여러 해 동안 그 어려운 가운데도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삼고 위기를 극복한 그 사실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리고 삼성 가족들에게도 그런 신뢰 관계가 회사 발전에 가장 큰 원동력이란 것을 교육시켰습니다. 즉 깊고 깊은 우물을 파 놓은 셈입니다.”
라고.
조선일보 논설고문이신 선우휘님과 1984년 1월호 《월간조선》에서 주고받으신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실제 대화는 1983년 12월 어느 날.
* 121쪽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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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 우리가 장차 노력하면 일본과 능히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 노력이 절대 필요할 깁니다. 지금 이 정도로 가선 안 됩니다. 제가 1950년에 일본에 해방 후론 처음으로 갔십니다. 패전한 지 5년째 됐는데 새 옷 입은 사람이 하나도 안 뵈. 전부 옷이 다 떨어졌고… 정무총감하던 다나까 다께오씨도 나왔는데 다 떨어진 옷 입고 식산국장 하던 호즈미씨도 마찬가지고, 영양이 전부 실조해 있십디다.
7천만 일본 국민들은 옛날 군부에 대한 원망, 원한, 정부에 대한 불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불안을 안 느끼는 사람들이 없었십니다.
맥아더 사령부는 그 때 일본을 등외국(等外國)으로 만들어 버리기로 방침을 딱 세우고 있었십니다. 3등국도 아니고 등외국입니다. 그래서 중공업도 패체하고 가와사끼중공업은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해 버리고 했십니다.
그 때 영국 사람들이 시찰단을 만들어서 한 50명이 됐습니다만, 일본을 둘러보고 가면서 말했습니다. 참, 유명한 이야기를 했제. 일본은 부흥한다, 했십니다.
선우 : 그 이유는요?
이 : 정부에 대한 원망, 불신은 있지만, 그 오야붕 꼬붕 있지요? 그런 의리, 신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살아있다, 이것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다, 그거지요. 그 신문은 지금도 있을 깁니다.
이 : 그, 정말 날카롭게 봤군요. ---
일본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학자가 'TRUST'란 책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개인이든, 어떤 수규모 집단이든, 어떤 국가든 신뢰 구축이 공고하지 않으면 쇠퇴와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점은 깊이 음미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 트러스트(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구승회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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