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조세포탈 혐의로 국세청이 고발한 박연차(63) 태광실업 회장을 빠르면 이번 주중 소환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박 회장의 '정계 커넥션'도 검찰 수사를 통해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검찰은 노건평씨를 둘러싼 금품 로비 의혹이 '세종캐피탈-정화삼-노건평'으로 이어지는 단순로비 사건인 반면, 박 회장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의혹은 수사 결과에 따라 지난 정권 실력자들이 줄줄이 연루될 수 있는 '뇌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박 회장 의혹이 '뇌관'이 될지도"
검찰은 세종캐피탈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6)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마무리하는 대로 박 회장을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국세청 특별세무조사에서 드러난 박 회장의 뭉칫돈 600억원을 검찰이 추적하다 보면 의외로 '대어(大魚)'가 걸려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주변 정치인들에게 꾸준히 돈을 건넸다.
박 회장은 지난 2002년 노무현 정권의 실세 정치인으로 알려진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에게 7억원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어 지난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20명에게 부인과 태광실업 임직원 명의로 1인당 300만~500만원씩 모두 9800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선관위에 적발돼 벌금 7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당시 태광실업측의 후원금을 받은 열린우리당 소속 17대 의원은 이광재·이화영·조경태·서갑원·조성래·김형주·이근식·유필우·변재일·김재윤·박병석·김종률 의원 등이다. 이와 별도로 박 회장은 자신의 명의로 윤원호·김우남·김교흥·김명자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의 측근은 언론인터뷰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박 회장과 친분 있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박 회장에게 연락해 '젊은 의원들을 도와주라'고 해서 후원해야 할 의원 명단을 받아 박 회장 돈으로 후원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소속 '386 정치인' 등 대거 후원
박 회장은 최근 측근을 통해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에 오히려 사업에서 손해를 봤다"는 점을 언론에 흘리면서 노 전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지만 의혹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도 특히 이광재 의원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박 회장의 셋째딸(30)은 청와대 국정상황실 8급 직원으로 채용됐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이 바로 이 의원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특혜 채용' 논란이 일자 "박 회장의 딸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셋째 딸은 청와대에서 1년6개월 가량 근무한 뒤, 이 의원이 2004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다시 이 의원의 6급 비서로 채용됐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박 회장 딸이 미국 뉴욕대 출신에다 영어도 잘해서 채용했던 것"이라면서 "박 회장의 딸이 내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언론에서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박 회장과 (나는) 철저하게 원칙적 관계만 유지했다"고 말했다.
작년 2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의 주례로 열린 박 회장의 셋째딸의 결혼식은 노무현 정권 내에서 박 회장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결혼식에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을 비롯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신상우 KBO 총재, 김혁규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박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이광재, 서갑원, 이화영 등 열린우리당 내 '친노 의원'도 하객으로 참석하거나 화환을 보냈다. 수감된 후 세종증권 인수 비리에 연루돼 다시 수사를 받고 있는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은 화환을 보냈다.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이 워낙 실세였던 만큼 몰래 박 회장 돈을 받아 쓰거나 박 회장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지난 정권 인사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똥이 의외로 현 여권 쪽으로도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회장은 1981년 민정당 중앙위원·2000년 한나라당의 재정위원을 지내고, 2002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에 10억원의 특별 당비를 내는 등 권력과 항상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박 회장이 사업가답게 현 여권 정치인들에게도 '보험용 정치자금'을 묻어둔 것이 드러나면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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